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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상공서 뛰어내린 공수부대원 아버지 그립습니다”

입력 : 2020-10-22 06:00:00 수정 : 2020-10-21 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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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육군 6·25전쟁 참전용사 아들의 ‘사부곡’
국군·유엔군의 평양 점령 70주년 맞아 소개
6·25전쟁에서 맹활약한 미 육군 제187공수연대 소속 장병들이 수송기 안에서 낙하를 준비하는 모습. 유엔사 SNS 캡처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50년 10월 20일. 북한 평양 상공에 미국 공군 수송기 110여대가 출현했다. 얼마 뒤 미 육군 187공수연대 소속 장병들이 낙하산을 타고 일제히 뛰어내렸다. 이들의 목표는 평양 북방 43㎞ 지점의 숙천∼순천 지구를 장악, 도망치는 북한군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평양 점령 작전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이었다. 불과 하루 전인 1950년 10월 19일 평양 시내는 이미 국군과 유엔군 수중에 떨어진 상태였다.

 

70년 전 그날 평양 상공을 가득 채운 공수부대원 중 겨우 19살 나이의 로버트 테일러 일병도 있었다. 1948년 육군에 입대한 그는 평화로운 켄터키주(州)의 한 부대에 복무하다가 한국에서 6·25 전쟁이 터지자 처음 실전에 배치됐다. 인천상륙작전 결과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되찾은 직후인 1950년 9월 25일 김포 비행장을 통해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테일러 일병한테 ‘코리아(Korea)’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유엔군사령부는 테일러의 아들이 최근 아버지를 추모하며 작성한 글을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 이는 유엔사가 올해 6·25전쟁 70주기를 맞아 전세계의 참전용사 및 그 유족을 상대로 벌이는 ‘당신의 사연을 들려주세요(#ShareYourStory)’ 캠페인의 일환이다.

 

아들의 기억에 의하면 테일러 일병은 1950년 9월부터 이듬해인 1951년 5월까지 한국에서 싸웠다. 국군과 유엔군이 승기를 잡고 북진하던 시기 전장에 투입됐다가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기울어 옛 38선 부근에서 전선이 교착됐을 무렵 전선을 떠난 셈이다.

 

이 기간 미 육군의 최정예 부대인 187공수연대는 숱한 전투를 치렀고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한때 평양까지 진출했던 연대는 중공군 참전 후 남하해 경기 파주 문산리, 강원 인제 부근에서 북한군 및 중공군과 다시 치열한 접전을 치렀다.

로버트 테일러(1931∼2007) 전 미국 육군 원사. 유엔사 SNS 캡처

테일러 일병 역시 1951년 5월 28일 전투 도중 크게 다쳐 후송되는 처지가 됐다. 6·25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그는 동성훈장(Bronze Star)을 받았고, 작전 도중 다친 군인을 위한 퍼플하트훈장(Purple Heart)도 수여됐다.

 

“아버진 전쟁 내내 숱하게 낙하산을 타고 적 점령지에 착륙하거나 공중에서 적군을 상대로 공격을 펼쳤죠. 훈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테일러의 아들)

 

6·25전쟁이 끝난 뒤 테일러는 육군에 계속 머물렀다. 베트남 전쟁에 3차례 파병된 것을 비롯해 그의 군 경력은 총 27년에 달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계속 이어갔다. 6·25전쟁 후 20여 년 만인 1973년 주한미군 산하 제44방공포병연대에 배속된 것이 대표적이다. 1975년 44세 나이로 마침내 퇴역했을 때 테일러의 계급은 주임원사였다.

 

“안타깝게도 아버진 2007년 11월 6일에 돌아가셨어요. 만약 아직 살아 계셨다면 올해 89세가 되셨겠군요.”(테일러의 아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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