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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에 술 판' 알바생, 처벌 면하고 명예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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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22 19:00:00 수정 : 2019-06-21 16: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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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청소년에 소주 5병 판 알바생 경찰에 입건 / "미성년자인 줄 꿈에도 몰랐는데… 억울합니다" / 검찰 '기소유예' 처분에도 헌법재판소 문 두드려 / 재판관들, "억울할 만하다"… 기소유예 취소 결정

 

음식과 술을 함께 파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알바)생이 미성년자한테 소주를 팔았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이 알바생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으로 다행히 재판에 넘겨지진 않았으나, ‘범죄 혐의는 인정된다’는 취지의 기소유예 결정이 못내 불만이었다.

 

결국 알바생은 헌법재판소에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 기어이 기소유예 취소 결정을 받아냈다. 이 식당에선 알바생, 그리고 미성년자 손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성년자인 줄 꿈에도 몰랐는데… 억울합니다"

 

사건은 지난해 11월 어느 날 늦은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가 알바생으로 일하는 경기도 광명시의 한 음식점에 B(당시 18세)양이 성인 남자 2명과 함께 들어왔다.

 

B양 등 일행 3명은 소주 5병과 안주를 포함해 5만5000원어치를 주문했다. A씨가 이 주문을 받아 그들에게 술과 음식을 판매했다.

 

그런데 술잔이 몇 순배 돈 뒤 B양 일행이 옆 테이블의 다른 손님들과 싸움이 붙었다. 출동한 경찰은 B양도 싸움의 일방 당사자였던 만큼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2000년 8월에 태어난 B양은 당시 18세로 청소년보호법상 음주가 가능한 연령(19세)에 못 미쳤다.

 

폐쇄회로(CC)TV를 재생한 경찰은 미성년자인 B양이 술을 마시는 장면까지 확인한 뒤 B양 일행의 주문을 받아 술을 판매한 알바생 A씨를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양이 미성년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B양 일행이 자리에 앉기 전에 이미 다른 직원으로부터 신분증 검사를 받고 성년자로 확인을 받았다고 생각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경찰은 A씨가 알바생으로 일한 식당의 점장 C씨도 불러 조사했다. C씨는 “보통 카운터에 직원이 있으면 1차로 카운터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카운터에 직원이 없으면 손님이 앉은 테이블 서빙을 맡은 직원이 2차로 신분증을 확인한다”며 “B양 일행이 들어왔을 때에는 마침 카운터에 직원이 없어 테이블 서빙을 담당하는 직원인 A씨가 신분증을 확인했어야 하는데 확인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C씨의 진술은 결과적으로 A씨한테 불리하게 작용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A씨가 B양의 신분증 확인 절차를 생략한 부분에 대해선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다. 다만 A씨가 알바생이란 점 등을 감안해 올해 1월 ‘범죄 혐의는 인정되나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헌재, "검찰 수사가 미진"… 기소유예 처분 취소

 

A씨는 몹시 억울했다. 앞으로 다른 직장에 정식으로 취업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기소유예 딱지가 무슨 ‘주홍글씨’처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것 같아 암담했다. 결국 A씨는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헌법재판관들이 수사기록을 살펴보니 B양 일행이 음식점에 들어갈 때 뭔가 수상쩍은 행동을 한 점이 포착됐다. 사건 당일 B양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모자가 달린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상태였는데, 음식점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다가 입구 쪽 계산대에 있던 종업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신분증 검사를 받지 않은 채 식당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B양 일행은 서로 알던 사이도 아니었다. B양은 경찰 조사에서 “그날(사건 당일) 길에서 처음 만나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은 남자들과 함께 식당에 간 것”이라고 진술했다.

 

재판관들은 A씨한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A씨로서는 식당 입구에서 B양의 나이 확인이 이미 이뤄진 뒤 테이블 좌석 안내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보인다”며 “B양의 나이 확인 조치가 누락된 사정이 있었음을 알았을 가능성은 적다”고 판시했다.

 

22일 재판관 9명은 “A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자의적 증거 판단, 수사 미진, 법리 오해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며 만장일치로 취소 결정을 내려 사실상 ‘무혐의’가 확정됐다. “검찰의 그릇된 처분으로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했다”고도 했다.

 

 

이처럼 A씨는 헌재 심리를 거쳐 ‘누명’을 벗을 수 있었으나 전국의 식당에서 일하는 수많은 알바생이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 전락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보호법 규정을 정확히 숙지하고 미성년자 확인 절차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알바생들한테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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