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의 5·19 대국민담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변화를 위해 안전관련 부처의 대수술과 공직사회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난맥상을 드러낸 해양경찰청과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는 사실상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됐다. 정권 중간에 강도 높은 정부 부처 개편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이다.
세월호 참사에 미숙한 대응과 정부 간 혼선으로 빚어진 민심 악화가 그만큼 심각한 수준임을 반영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역사에 지우기 힘든 아픈 상처로 기록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 것”이라고 다짐했다.
◆무능한 ‘안전부처’ 엄벌
‘해양경찰청 해체,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대폭 축소.’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부처는 언제든지 없어지거나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는 본보기를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평가이다.
해경에 대해선 구조업무의 실패 책임을 물어 전격 해체를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직후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안행부와 해수부의 미숙한 대응도 문책했다. 두 부처의 안전 기능을 분리해 국가안전처로 넘기는 등 겨우 조직의 명맥만 유지하게 했다. 안행부는 16년 전 김대중 정부의 행정자치부 체제로 되돌아갔다. 박 대통령은 “국민안전을 최종 책임져야 할 안행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해경을 지휘 감독하는 해수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세 부처는 사고 초기 대응 혼선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증폭시켜 어떤 식으로든 처벌이 예고됐다. 하지만 책임자 문책 수준을 넘어 조직을 해체 수준으로 수술대에 올린 것은 이들 조직에 대한 대통령의 ‘배신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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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강인했던 국가 최고지도자의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죄와 회한의 눈물이다. 박 대통령은 참사 34일째인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던 중 ‘세월호 영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다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는 육·해·공 대형재난에 대비하는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다. 안전처는 안행부와 해수부의 안전 기능을 이관받는다. 육상 재난은 현장의 소방본부와 지방자치단체, 재난 소관부처가 신속·효율적으로 대응하고 해상 재난은 서해·남해·동해·제주 등 4개 지역본부로 구성된 해양안전본부를 구축해 구조와 구난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항공, 에너지, 화학, 통신, 인프라 등 각종 재난은 특수재난본부를 설치해 적극 대응키로 했다.
안전처는 첨단장비와 고도의 기술을 갖춘 특수기동구조대를 산하에 신설한다. 박 대통령은 안전처 운영과 관련해 “군이나 경찰특공대처럼 각종 유형별 재난에 대한 끊임없는 반복훈련을 통해 골든타임의 위기대응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사고 직후 초동대응이 안 돼 세월호에 갇힌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무관치 않다.
안전처는 구성원 선발을 전문가 위주의 공채로 진행하고 순환보직도 전문성 강화를 위해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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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60여년 만에… 세월호 구조업무 실패와 관련해 해경 해체가 결정된 19일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본청 정문에 근무하는 의경이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와 해경깃발을 바라보고 있다. 인천=이제원 기자 |
국무총리실의 위상은 강화될 전망이다. 총리실은 직속으로 행정혁신처를 신설해 안행부로부터 인사·조직 기능을 이관받게 된다. 국무총리가 공무원 100만명의 인사권을 쥐게 돼 대대적인 공직사회 인적쇄신과 조직 개편을 통해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등 공직사회 개혁을 주도할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다.
권력과 권한이 총리에게 분산돼 책임총리제가 자리 잡을 경우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리더십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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