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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식칼럼] 장수의 그늘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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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12 22:56:00 수정 : 2025-10-12 22: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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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 노후자금·건강 리스크
오래 사는 만큼 불안감도 더 커져
정년 연장·노후소득 보장망 확충
장수 사회에 맞게 제도 설계해야

한국은 인구학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다. 1970년 62.3세였던 평균수명은 1990년 71.4세, 2010년 80.0세를 거쳐 2023년에는 83.5세에 이르렀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7년이나 짧았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 사는 나라가 됐다. 여성은 평균 86.4세로 세계 3위, 남성은 80.6세로 12위다. 이제 한국은 명실상부한 ‘장수국가’다. 경제발전의 기적을 토대로 이루어진 의학기술의 발전, 보건·의료제도의 확대, 생활습관의 개선이 그 배경이다.

하지만 오래 산다는 것이 늘 축복만은 아니다. 1970년대라면 정년 60세가 ‘너무 긴 노동기간’이었다. 그 시절의 평균수명으로 보면 일하다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퇴직 후에도 25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일하지 않는 25년’ 듣기에는 여유롭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오래 사는 만큼 새로운 형태의 불안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이른바 ‘장수리스크’다. 개인의 노후자금은 빨리 소진되고, 건강 문제는 더 오래 이어지며, 사회적 관계가 약해지는 심리적 위험이 뒤따른다. 결국 오래 사는 것이 ‘긴 행복’이 될지, ‘긴 걱정’이 될지 불확실하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장수의 그늘은 짙다. 국민연금의 지급 기간이 길어지면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의료비와 요양비는 빠르게 증가한다. 노인 빈곤율은 높아지고, 청년세대는 “내가 낸 세금이 돌아올까?” 하는 불안을 품게 된다. 오래 사는 것이 세대 간 부담의 문제로 번지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오래 사는 사회에서, 이제는 ‘노화 그 자체’가 하나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의 ‘노화 불안’ 수준은 5점 만점 중 3.23점으로 보통 이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불안이 더 이상 노년층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청년층(20~30대, 3.38점)이 중년층(40~50대, 3.19점)이나 고령층(60대 이상, 3.12점)보다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았는데, 벌써 장수의 위험을 걱정하는 세대가 된 셈이다. 이제 ‘노화 불안’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세대 전체가 공유하는 시대적 정서가 되어가고 있다. 오래 사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오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이런 불안을 외면한 채 장수리스크를 방치한다면, 오래 사는 인생이 꼭 행복한 인생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65세 이상 노인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5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그 경고음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래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개인의 준비와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가야 한다. 개인은 다양한 소득원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저축 등을 통해 노후의 재정 기반을 분산하고, 평생학습과 재취업 기회를 활용해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한 가지 소득원에만 기대기엔 인생이 너무 길다. 건강 역시 중요한 자산이다. 정기검진, 운동, 식습관 개선 등으로 ‘건강자산’을 쌓고, 젊을 때부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 고립을 예방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정년 연장, 연금과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강화, 노후소득 보장망 확충이 필요하다. 의료·돌봄·주거 복지도 수명에 맞게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오래 사는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해서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길이가 늘어난 만큼, 그 내용을 채우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오래 사는 인생보다, 잘 사는 인생이 더 중요하다.” 젊을 때부터 장수를 준비하는 지혜,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 국가는 이제 단순한 ‘수명 연장’을 넘어 ‘행복한 장수’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장수국가의 모습일 것이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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