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첫 일정으로 택한 것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참배였다.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3만6000명이 훨씬 넘는다.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 명비들을 둘러본 오바마는 특별히 하와이주(州) 출신 참전용사들을 위한 공간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꽃을 바친 뒤 잠시 눈을 감고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15분가량 전쟁기념관에 머무는 내내 오바마는 깊은 상념에 잠긴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1961년 8월 4일 하와이 호놀룰루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미국 태생의 백인이고 아버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흑인 유학생이었다. 미국은 속지주의(屬地主義)의 나라인 만큼 오바마는 부친 국적과 상관없이 출생과 동시에 미국인이었다. 다만 부모가 워낙 일찍 이혼하는 바람에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타국살이를 하는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친척이 많이 거주하고 무엇보다 모교인 푸나호우 고교가 있는 하와이가 오바마의 고향임은 명백하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하와이 출신은 오바마가 유일하다.
한국과 하와이의 인연은 1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한말인 1903년 1월 조선인 102명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노동자로 하와이에 도착한다. 이것이 미국 내 한인 이민사의 출발점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하와이 젊은이 약 7500명이 미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45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대부분은 하와이 펀치볼의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끝내 귀환하지 못한 실종자들은 어서 조국과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그곳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하와이 한국전쟁기념재단(KWFI)은 하와이 주정부와 협력해 일명 ‘한국전쟁기념관’을 하와이에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전쟁기념관을 운영하는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이 지난 2일 하와이를 찾아 실비아 루크 하와이 부(副)주지사와 면담하고 기념관 건립 지원을 부탁했다. 1977년 하와이로 이민한 재미교포 출신인 루크 부주지사는 2023년 방한 당시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놀라운 발전을 이룬 한국의 모습에 감격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 그해 여름 하와이 산불 사태 당시 한국이 제일 먼저 나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점을 거론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아무쪼록 양측의 교류·협력이 좋은 결실을 맺어 빠른 시일 내에 하와이에 한·미 동맹의 굳건함, 그리고 한국과 하와이의 120년 우정을 상징할 한국전쟁기념관이 들어서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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