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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군 품에 ‘백두산’을 안긴 평생 뱃사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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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5 15:31:40 수정 : 2025-10-05 15:31:40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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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출범한 해군은 초창기만 해도 보잘것없었다. 배는 여러 척 있다고 해도 함포가 장착돼 해상에서 적과 싸울 수 있는 전함은 사실상 없었다. 해군 장병들이 월급 일부를 갹출해 제대로 된 함정 구입에 필요한 돈을 모았고, 여기에 장병 가족들도 삯바느질 등을 통해 동참했다. 마침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당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그동안 쌓인 기부금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적당한 군함 물색에 나섰다. 그때 뉴욕에서 거금을 주고 사들인 전함이 바로 우리 해군 최초의 전함인 ‘백두산함’이다. 손 총장은 일행 중 박옥규(1901∼1971) 중령을 백두산함 초대 함장에 임명한 뒤 즉각 배를 몰고 태평양을 건너 귀국할 것을 지시했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고 하와이 호놀룰루를 경유하는 기나긴 항해였다.

 

1949년 우리 해군이 도입한 ‘백두산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만들어진 구형 선박을 인수해 한국 해군 최초의 전함으로 탈바꿈시켰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부산 앞바다에서 북한군 600여명을 태운 무장 수송선을 격침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국방부 제공

이렇게 해서 우리 해군의 전력이 된 백두산함은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일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6월 25일 밤 부산 앞바다를 통해 몰래 침투하려던 북한군 약 600명을 태운 무장 수송선을 조기에 식별하고 포격을 가해 격침시킨 것이다. 오늘날 교전이 벌어진 장소를 따 ‘대한해협 해전’으로 불린다. 빛나는 승전을 이끈 함장은 박옥규 중령이 아니고 후임자인 최용규 중령이었다, 그래도 미국에서 도입한 백두산함을 잘 정비하고 개량해 실전 배치가 가능한 수준으로 만든 박 중령의 노고가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백두산함 인수 경험이 있는 박 중령은 이후에도 금강산함, 삼각산함, 지리산함 등 미국산 군함들을 들여와 우리 해군에 인도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1950년 12월에는 압록함 함장으로서 성진 철수 작전 엄호에서 공을 세웠다.

 

6·25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고심 끝에 당시 소장 계급이던 박옥규 제독한테 해군 지휘를 맡겼다. 그는 2대 해군총장으로 일하는 동안 중장으로 진급했고, 약 1년 4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한 뒤 전역했다. 정부는 6·25 전후 해군 조직 정비에 기여한 공로로 박 제독에게 태극·을지·충무·화랑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1950년대 후반 어느 일간지는 그를 “전형적인 뱃사공”이라고 부르며 “총장이 되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뒤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다가 정신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술을 마셨다”고 소개했다. 종종 술냄새를 풍기는 박 제독을 부하들은 “막걸리 대장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랐다니 용장(勇將)이요, 지장(智將)이기 전에 덕장(德將)이었음이 분명하다.

 

지난 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달(10월)의 호국 인물’ 박옥규 제독을 기리는 현양 행사가 열려 주요 참석자들이 고인의 영정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 양동학 전쟁기념사업회 사무총장(예비역 육군 준장), 유족 대표 박호성 전 해양경찰청 경감(고인의 손자), 박상현씨(고인의 증손자).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지난 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최근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에 의해 ‘이달(10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박옥규 제독을 기리는 현양 행사가 열렸다. 고인의 손자인 박호성 전 해양경찰청 경감과 해군의 원로라고 할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 최윤희 전 합동참모의장 등이 함께했다. 박 전 경감은 “할아버지와 함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해군을 떠난 뒤에도 “육지에서는 살 수 없다. 바닷바람을 마셔야 한다”며 서울 생활을 마다하고 기어이 부산 해변가로 이사를 갔다는 박 제독, 멀리 항구를 들락거리는 배들의 모습에 안도하며 소일거리로 삼았다는 박 제독을 떠올리니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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