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상미의감성엽서] 가을 편지

관련이슈 김상미의 감성엽서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9-30 23:16:47 수정 : 2025-09-30 23:16:46

인쇄 메일 url 공유 - +

가을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란 노랫말처럼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계절. 하늘은 높고, 바람은 기분 좋게 선선하고, 한여름 폭염 속에 잊고 지냈던 내밀한 쓸쓸함은 단풍 들 준비로 바쁜, 서늘하면서도 아름다운 계절. 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대신 작가들이 쓴 편지를 “그대가 되어”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예전에 읽었던 편지글이 담긴 책들을 책꽂이에서 몇 권 뽑아낸다.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가 1946~1959년 주고받은 편지 묶음집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마음의숲), ‘열화당’에서 나온 ‘어떤 그림-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그리고 폴 오스터와 존 쿳시가 3년간 주고받은 편지 ‘디어 존, 디어 폴’(열린책들)을.

연애편지글들은 일부러 배제했다. 그보다는 시대에 대한 연민과 작품들에 관한 고뇌와 깊은 우정이 담긴 글들이 요즘 내겐 더 절실하므로. 예전엔 문학적 쓸모 때문에 유명 작가들의 편지나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 읽었지만, 지금은 그 너머, 그들의 삶과 문학에 스며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과 깊은 우정이 그리워 그들을 찾아 읽는다. 그들처럼 나도 즐겁고 치열하게 잘 늙어가기 위해.

그중에서도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는 짧고 간결함에도 문장 하나하나에 배인 인간미와 겸손, 깍듯하면서도 최고의 미덕인 깊은 우정이 담겨 있어 사람이 그리운 내 방을 읽는 내내 환하고 포근하게 밝혀준다. 보르헤스가 말한 “우정에는 어떤 마술적인 게, 일종의 마력 같은 게 있고, 우정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열정이다”라는 그 우정으로! 하여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우정을 갖고 싶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오게 한다. 오, 디어 카뮈, 디어 샤르!

그에 비해 ‘디어 폴, 디어 존’은 3년간 계약 우정으로 이 시대 작가답게 이 세상 모든 이슈를 다 다루고 나눈다. 우정, 스포츠, 작가의 삶, 정치, 휴대전화, 사뮈엘 베케트, 컴퓨터, 근친상간, 문자 K, 이스라엘, 좋아하는 영화, 서평가, 노년, 완벽주의와 섹스 등등. 새삼 지적인 그 논의들이 아주 새롭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지켜보고 읽는 내내 즐겁고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아마 대부분 무언가를 쓰고 싶어! 안달할지도 모른다. 이 편지들엔 세상과 자신에 대한 절실한 비평과 진실한 우정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 있으니까.

하여 나는 이 세상 모든 편지의 힘을 믿는다. 우정의 힘을 믿듯이. 어쩌면 우리가 쓰는 시도 소설도 노래도 그림도 결국은 세상과 자신을 향해 쓰는 편지일지도. 하여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나도 누군가에게 꼭 편지를 쓰고 싶다.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될지라도.


김상미 시인


오피니언

포토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아일릿 원희 '반가운 손인사'
  • 미야오 엘라 '시크한 손하트'
  • 박규영 '사랑스러운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