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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기협 축구대회와 계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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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2 22:55:44 수정 : 2025-09-22 22:55:42
변세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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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행사라도 반복되면 전통이 되기 마련이다. 한국기자협회 축구대회도 마찬가지다. 1972년부터 시작해 올해 51회차를 맞은 권위 있는 대회다.

올해 1월에 입사한 신입 기자로서 처음으로 축구대회에 참가했다. 회사 야유회 수준을 생각했는데, 아뿔싸. 동네축구에선 경험하지 못한 수준 높은 심판진은 스로인 파울부터 오프사이드까지 매의 눈으로 잡아냈다. 무엇보다 공을 두고 벌어지는 기자들의 치열한 몸싸움. 협회 홈페이지에는 분명 ‘회원 간 친목 도모’라 적혀 있는데 몇 가지 단어를 빠뜨린 듯하다. 그럼에도 경기가 끝난 뒤 서로 축하와 격려를 주고받는 모습은 이 대회가 언론인들의 작은 축제이자 단합의 장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 없는 순간이었다.

변세현 정치부 기자

기협 축구대회가 매번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된 건 아니다. 때론 저항과 연대의 무대이기도 했다. 1980년대 선배 기자들은 군사정권의 검열에 짓눌린 사회 분위기에 맞서 ‘검열반대’, ‘언론자유’라고 쓴 띠를 두르고 경기에 나섰다고 한다. 군부독재 시절엔 기자협회보가 세 차례나 폐간되면서 덩달아 대회도 취소되기도 했다. 2018년엔 파업 중이던 YTN 기자들이 ‘공정방송’이라 쓰인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참가했다. 단순히 회사별 실력을 겨루는 자리를 넘어 표현의 자유를 재차 확인하는 자리였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표현의 자유는 이제 너무나 당연해서 마치 축구장의 단단한 지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절대 당연하지 않다. 바로 이달 초 네팔 정부가 유튜브,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차단하지 않았는가. 그간 정부의 부패와 무능, 빈부 격차에 불만을 품었던 시민들에게 SNS 금지는 저항의 촉매가 됐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네팔 전역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시위는 70여명의 사망자와 수십조원의 재산피해를 낳은 채 일단락됐고, 혼란의 수습은 수실라 카르키 임시총리를 중심으로 한 과도정부의 몫으로 남았다.

불과 9개월 전 우리 역시 비상계엄을 경험했다. 당시 계엄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 그날 국회로 향했던 선배 기자들과 보좌관,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권리와 자유는 마음껏 뛸 수 있는 축구장만큼이나 단단하지 않다.

다만, 한번 다져진 땅은 기존보다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마치 한국에서 1979년의 계엄과 2024년의 계엄이 다른 결과를 낳았듯 변화와 단단함은 축적된다.

세계일보는 올해 기협 축구대회에서 첫 경기 패배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0대0으로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국 막판에 실점을 허용했다. 비록 경기는 패배했지만 아쉬움보단 선배들과 함께 뛴 시간의 즐거움이 더 크게 남는다. 기협 축구대회의 전통이 이어질수록 한국 언론의 책임과 의무, 권리와 윤리도 더욱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물론 세계일보의 순위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 2003년에는 세계일보가 결승전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축구에 자신 있는 후배 기자들의 입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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