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손잡고 사진 찍으면 어떻겠나”
장동혁, 정청래 겨냥 뼈있는 농담
李, 모두 발언 첫 순서 張에 양보
張 “비판할건 비판… 민생 등 협조”
李 “더 세게 하실 줄 알았는데 감사”
李 ‘통합’ 넥타이에 비빔밥 오찬
여야 “허심탄회한 대화 나눴다”
이재명 대통령은 8일 여야 대표와의 오찬회동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첫 악수를 성사시키며 정치권 화합의 장면을 연출했다. 대통령은 두 사람이 손을 맞잡자 환한 표정으로 “보기 좋다”고 말하며 등을 두드렸고, 기념사진 촬영에서는 “손을 잡고 찍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 대표와 장 대표가 회동을 앞두고 악수를 할지는 정치권의 관심사였다. 정 대표는 취임 이후 줄곧 “내란 세력과 악수하지 않겠다”거나 “악수도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야당과의 접촉을 거부해 왔다. 전임 송언석 전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와는 한 차례도 악수하지 않았고 예방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대통령이 직접 중재에 나서면서 두 사람은 두 차례 악수를 나눴다. 정 대표는 “오늘은 (이 대통령이) ‘하모니 메이커(harmony maker)’가 되신 것 같다. 장 대표님과 악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공개 회동 분위기는 비교적 화기애애했다. 장 대표는 첫 순서 발언에서 “정 대표님과 악수하려고 마늘과 쑥을 먹기 시작했는데, 미처 100일이 되지 않았는데 악수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이는 정 대표의 기존 발언을 빗댄 ‘뼈 있는’ 농담이었다. 이어 약 3000자 분량의 모두발언에서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건, 한·미 관세 협상,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부동산 정책, 정부조직 개편, 특검 문제 등 현안을 언급하면서도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잘 살펴봐 줬으면 한다” 등 비교적 온화한 표현을 사용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에게 “뒤늦게나마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린다”며 “다음에도 좋은 만남이 오늘처럼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곧바로 “비상계엄에 대해 책임 있는 세력은 국민께 진정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강경파를 중심으로는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의 계엄·‘내란 옹호’ 행보를 사과하지 않으면 협치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여전하다. 다만 당내 일각에서는 “국민이 바라는 것은 미래지향적 협치”라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마지막 순서로 발언한 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국민 통합’의 책임을 강조하며 정 대표에게 “여당이 더 많이 가졌으니까 더 많이 내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고, 정 대표는 “네,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장 대표를 향해서는 “대표님 말씀에 공감 가는 게 꽤 많다”며 “많이 도와주실 것 같아서 안심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반론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 같다”며 장 대표에게 한 번 더 발언 기회를 줬고, 장 대표는 “말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런 게 협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며 “여당과 한 번 대화할 때 야당과 두 번, 세 번 대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회동에서 대통령은 넥타이와 오찬 메뉴를 통해서도 화합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빨간색과 파란색, 흰색이 섞인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는데, 대선후보 시절부터 통합을 상징해온 ‘블루&레드’ 아이템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정 대표는 푸른색 계열, 장 대표는 붉은색 계열 넥타이를 착용해 자연스레 대비를 이뤘다. 오찬 메뉴 역시 비빔밥 등 ‘화합’을 의미하는 한식으로 구성됐다.

이번 회동에는 민주당에서 정 대표와 박수현 수석대변인, 한민수 대표 비서실장이,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와 박성훈 수석대변인, 박준태 비서실장이 동석했다. 대통령실에서는 강훈식 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 김병욱 정무비서관이 함께 자리했다.
이 대통령은 오찬 후에도 장 대표와 별도로 30분간 단독 회동을 소화했다.

단독 회동에선 장 대표가 최교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선, 특검 수사,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등 현안에 대해 보다 강한 어조로 우려를 제기했고, 이 대통령은 “상생과 화합이라는 큰 차원에서 듣겠다”고 말했다고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여야 대표 회동에 앞서 오전 11시 30분께 정 대표와도 단독으로 만나 대화했고, 이 같은 사실을 장 대표에게도 설명했다.
이날 회동 분위기와 관련해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여야 공동 발표문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고 평가했고,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저로서는 ‘화기애애라고 쓰고 싶었지만 야당 대변인의 표현대로 (공동 발표문에서는) ‘허심탄회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도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일단 만나는 게 시작”이라며 “긍정적 회담으로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만남이 단순한 이벤트에 그칠지, 아니면 정기국회 협치의 시발점이 될지 주목한다.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 민생경제 법안, 사법·검찰 개혁, 노란봉투법·중대재해처벌법 처리, 특검 등 굵직한 현안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이 이날 보여준 ‘화합 제스처’와 야당에 대한 예우가 실제 협치로 이어진다면 정기국회 의제 협상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반대로 계엄·탄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될 경우 정국은 다시 강대강 대결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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