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갑자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공지하면서 김정은의 올해 방중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가 될 것이었고, 첫 관문을 중국에 도착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될 터였다.
2일 새벽 김정은의 전용열차가 단둥을 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베이징 도착은 오후 3시쯤으로 예상됐다. 그날 오전 답사 차 베이징역 진입 철도가 내려다보이는 베이징 명(明)대 성벽 유적공원에 가 보니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출입을 통제한다고 공지돼 있었다. 그럼 일단 그 시간대에 김정은이 오는 건 맞겠구나 싶었다.

성벽 공원을 내려와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퉁후이허(通惠河) 근처의 작은 공원에 자리 잡았다. 삼엄한 베이징역 인근에 비해 감시가 덜했기 때문이었다. 여유롭게 낚싯대를 드리운 시민들 사이로 힐끔힐끔 기찻길을 쳐다봤다. 김정은의 전용열차는 중국의 일반 열차와 비슷한 진녹색이라 과거 보도 사진에서 공개된 특징들을 잘 숙지해 구별해야 했다. 최고존엄답게 기차에 온통 번쩍번쩍한 금장이라도 둘렀다면 식별이 쉬웠으련만.
사실 그가 오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서 사진을 찍어야 하나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동선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데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보통 방문 사실을 사후에 보도한다. 그래서 전용열차가 베이징역에 도착하는 것을 봐야 했고, 그에 맞춰 속보라도 한 줄 내려면 ‘내가 봤다’고 쓸 수는 없으니 사진이 필요한 것이다.
순찰하는 공안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 자연스럽게 벤치에 앉아 있는데, 몇 사람이 슬금슬금 근처로 와서는 기찻길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추측건대 외국 기자이거나 혹은 외국 매체로부터 사진 촬영을 의뢰받은 이들로 보였다. 주섬주섬 삼각대를 꺼내드는 모습을 본 공안이 다가가 그들을 쫓아냈다. 괜히 내게까지 불똥이 튈세라 벤치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웠지만 나무가 드리워져 그늘진 옆 벤치로 가자니 시야에서 기차가 안 보여 어쩔 수 없었다.
오후 4시쯤 드디어 김정은의 열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기차에 달린 인공기도 확인됐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전송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공안이 다가와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이들은 기자 휴대전화에 찍힌 열차 사진을 삭제하고 휴지통까지 비운 뒤 여권과 기자증 등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한 명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기자의 얼굴 사진을 찍자 화면에 기자와 가족의 여권사진이 바로 떴다.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 수준을 새삼 느꼈다.
사진을 다 지운 그들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전송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전송하지 않았고, 필요하면 채팅 기록을 보라고 하니 가봐도 좋다고 했다. 그들은 사진을 모두 지웠고, 나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 어쨌거나 잘 마무리된 셈이다.
뭐하러 이 고생을 했나 싶다가도 김정은이 베이징역에 들어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조선중앙통신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김정은이 열차에서 내리는 사진을 공개했다. 딸 주애도 함께였다. 다음날 신문 지면에는 당연하게도 조선중앙통신의 사진이 실렸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