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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르로 떠나는 고성여행① 레오나르도 다빈치 숨결 느끼는 클로뤼세·앙부아즈성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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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3 13:12:47 수정 : 2025-08-23 13:12:41
앙부아즈=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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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강 따라 아름다운 고성 300여개 펼쳐지는 ‘프랑스의 정원’ 루아르/레오나르도 다빈치 말년 3년 보낸 클로뤼세/저택 들어서면 침실·작업실 등 거장 살아 숨쉬어/400m 거리엔 화려한 왕가의 거쳐 앙부아즈성/레오나르도 초청한 프랑수아 1세 지하 비밀통로 오가며 교류 

 

루아르 앙부아즈성.

은빛 윤슬로 반짝이는 푸른 루아르강은 유유히 흐른다. 강물 위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리운 천년 세월 고성들을 비추며. 거장이 눈길을 두었을 창문 앞에 서면 펼쳐지는 정원과 수백 살 삼나무. 죽을 때까지 신비로운 모나리자의 미소를 완성해 나가던 손때 묻은 작업실과 세상의 끝을 맞이한 침실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앙부아즈성과 클로뤼세로 들어서자 그의 마지막 숨결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떨림으로 밀려든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프랑스의 정원 루아르

 프랑스에서 가장 긴 1006km의 루아르강을 따라 펼쳐지는 계곡은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린다. 300개가 넘는 중세 요새와 르네상스 시대 고성들이 수채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과거 프랑스 왕가와 귀족들은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다양한 농산물과 품질이 뛰어난 와인이 생산되는 루아르의 매력에 반해 화려한 성을 짓고 숙소나 별장으로 애용했다. 투르에 숙소를 정하면 편리하게 루아르 고성 여행을 할 수 있다. 앙부아즈성, 클로뤼세, 쉬농소성이 차로 30분 거리에 몰려 있어 함께 묶어서 여행하기 좋다. 블루아성, 샹보르성도 1시간 거리다.

클로뤼세.
클로뤼세.

 클로뤼세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매표소를 지나자 넓은 초록 잔디 위에 놓인 붉은색 벽돌 건물과 크림색 석재, 경사진 지붕 위로 돌출된 창, 중앙의 팔각형 탑 등 중세 고딕 장식과 르네상스의 세련된 균형미가 어우러지는 저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클로뤼세 저택 오른쪽 2층 긴 복도 형식의 회랑은 로지아(Loggia). 축제와 시합을 관람하던 이탈리아식 갤러리로 중세 건축 요소인 망루가 있어 클로뤼세가 과거 요새화된 거주였음을 보여준다.

레오나르도가 눈을 감을 때까지 말년 3년을 보낸 곳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레오나르도는 왜 프랑스에서 타계했을까.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얽힌 인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르네상스 예술을 후원하던 왕은 밀라노에서 활동하던 레오나르도를 프랑스로 초청한다. 이에 1516년 레오나르도는 제자와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로 이주했고, 왕은 자신이 머물던 앙부아즈성에서 약 400m 떨어진 클로뤼세 저택을 다빈치의 거처로 내줬다. 프랑스로 올 때 레오나르도가 가져온 작품이 바로 ‘모나리자’,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 등이며 발명품 스케치와 메모 등이 포함됐다. 모나리자가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이유다.

클로뤼세 갤러리와 중세 망루.

 

갤러리에서 본 앙부아즈.

왕은 레오나르도에게 왕의 제1화가, 기술자, 건축가 직함을 내렸고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매년 거액의 연금을 지급했다. 덕분에 다빈치는 자유롭게 꿈꾸며 작품에 전념할 수 있었다. 왕은 이런 다빈치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고, 앙부아즈성과 클로뤼세를 연결하는 지하 비밀통로로 오가며 예술적·기술적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레오나르도는 왕의 요청에 따라 왕의 어머니가 성을 소유한 로모랑탱에 웅장한 궁전을 짓고 그곳을 새 수도로 만드는 이상적인 신도시를 설계한다. 또 샹보르성의 이중 나선 계단, 루아르계곡에서 리옹까지 연결되는 운하와 수문망, 왕실 연회와 축제를 위한 기계장치, 조립·해체가 가능한 이동 가옥 등 다양한 발명을 하다 1519년 5월 2일 클로뤼세 자신의 방에서 6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클로뤼세 레오나르도 침실.

 

클로뤼세 레오나르도 침실.
클로뤼세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의 방.

◆거장의 숨결을 느끼다

 클로뤼세 2층으로 들어서면 레오나르도의 방이 여행자를 맞는다. 창가에 서자 프랑수아 1세가 머물던 앙부아즈성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붉은 천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장식된 캐노피 침대가 레오나르도가 죽음을 맞은 곳이다. 침대 앞에 서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던 그의 예술혼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프랑수아 1세는 레오나르도의 임종을 지켜봤고 “그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 또다시 존재할 수 없다”며 애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생 미셸 기사단 목걸이 훈장으로 장식된 벽난로, 레오나르도와 친분이 있던 이탈리아 대영주들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16세기 토스카나 서랍장, 용과 씨름하는 코끼리가 표현된 태피스트리 등이 그대로 남아 거장의 자취를 전한다.크ㄹㄹ

클로뤼세 안 드 브르타뉴의 예배당.
클로뤼세 접견실.

프랑수아 1세의 누나이자 르네상스 최초의 여성작가인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의 방도 만난다. 1509~1515년 클로뤼세에서 거주한 그는 왕을 설득해 레오나르도를 초대한 인물이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영감을 받아 르네상스 문학의 걸작 ‘헵타메론(Heptaméron)’ 일부를 이곳에서 집필했다. 1층에는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아내 안 드 브루타뉴를 위해 지은 예배당이 남아 있다. 클로뤼세는 원래 성벽으로 둘러싼 중세 영주의 저택이었지만 1490년 샤를 8세가 매입한 뒤 개조해 프랑스 왕들의 휴가용 별장으로 삼았다. 예배당은 수태고지, 성모승천, 최후의 심판, 빛의 성모 마리아 등 레오나르도의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돼 있다. 빛의 성모를 라틴어로 ‘비르고 뤼시(Virgo Lucis)’로 부르는데 저택 이름 클로뤼세(Clos Luce)는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크로뤼세 작업실.
클로뤼세 작업실.
클로뤼세 작업실.

레오나르도가 왕족, 각국 대사, 예술가들을 접견하던 르네상스풍의 대형 리셉션 홀에는 모나리자 복제품, 등받이 높은 고딕식 의자, 집 주인들의 손때가 묻은 태피스트리들로 꾸며져 있다. 작업실로 들어서면 그가 금세라도 걸어 나올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가져와 생의 마지막까지 완성도를 높이던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의 복제품, 다양한 데생 작품과 로모랑탱 왕궁 프로젝트, 축제와 무도회 의상 디자인, 이중 나선형 계단 모형들을 만난다.

클로뤼세 주방.
클로뤼세 지하 비밀통로.

 레오나르도의 주방은 그의 요리사이던 마튀린느의 공간이다. 생애 말년에 채식주의자가 된 레오나르도는 유언을 통해 마튀린느에게 가죽으로 장식된 검은색 고급 코트를 물려준다. 주방에는 레오나르도가 겨울 저녁 몸을 녹이던 높은 석조 벽난로, 축제 준비에 사용되던 빵 상자와 구리접시, 르네상식 나무 의자, 롤랑의 노래 한편을 담은 15세기 태피스트리, 16세기 이슬람풍 사기그릇 등으로 꾸며졌다. 지하 모형실에는 그의 발명품 40여개가 전시됐고 왕이 방문하던 비밀통로도 보인다. 모형품은 레오나르도의 원본 데생을 토대로 IBM사에서 만들었다. 토목, 군사공학, 역학, 광학, 수리학, 항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해박하던 레오나르도의 발명품을 만날 수 있다. 

클로뤼세 모형실 운하건설 기계장치.
클로뤼세 정원 이중 구조 떡갈나무 다리.

모형실을 나서면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즐기는 라 테라스 르네상스를 지나 레오나르도 정원으로 이어진다. 그는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언덕에서 자란 그는 자연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세상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을 거듭했다. 정원은 레오나르도의 그림 속 정취를 그대로 담았다. 레오나르도 데생, 크로키, 회화작품 속 식물들로 꾸며 마치 그의 작품속을 거니는 것 같다.  지금도 널리 사용되는 그의 혁신적인 삼각측량법으로 설계한 이층 구조의 견고한 대형 떡갈나무 다리는 인기 높은 포토존이다. 안개처럼 수증기가 피어 오르게 만들어 마치 피사체와 풍경의 윤곽선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발명한 스푸마토 회화기법을 연상케한다. 정원에는 프로펠러, 전쟁의 섬, 이동식 다리, 선개교, 수문, 골드혼의 다리, 수차, 외륜선 등 다양한 발명품들로 꾸몄다. 

앙부아즈성.
앙부아즈성.
앙부아즈성.

◆거장이 잠든 앙부아즈성

 레오나르도가 영원한 안식에 든 곳은 앙부아즈성이다. 11~14세기 성주 가문의 문장으로 장식된 블라종 갤러리를 걸어 오르면 푸른 잔디 정원에 우뚝 선 앙부아즈성의 아름다운 자태에 탄성이 쏟아진다. 크림색 대리석벽과 원뿔 모양 첨탑으로 꾸민 성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다. 정원은 15세기 말 나폴리 출신 조경가가 설계한 최초의 이탈리아풍 정원인 나폴리 테라스와 19세기 루이 필리프 왕 때 만든 영국식 공원으로 조성됐다. 잘 다듬은 회양목과 희귀한 나무 수천 그루가 어우러져 걸을 때마다 감탄이 쏟아진다.

앙부아즈성 나폴리정원.
앙부아즈성 정원.
앙부아즈성 레바논 삼나무.

 

앙부아즈성 레오나르도 흉상.

 수령 180년을 훌쩍 넘긴 거대한 레바논 삼나무 근처에 레오나르도의 흉상이 보인다. 원래 이 자리에는 그가 묻힌 성 플로랑탱 성직자 성당이 있었는데 1810년 철거되면서 안식처가 맞은편 성 위베르 성당으로 옮겨졌다. 성당은 프랑스 왕들의 개인 예배실로, 루아르계곡 특유의 부드러운 석회질 응회암으로 조각한 정교한 장식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돋보인다.

앙부아즈성 왕의 침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죽음’.

 중세 요새이던 성은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예술가, 문학가들을 초청해 고딕 스타일이 가미된 독창적인 초기 프랑스 르네상스 스타일로 완전히 바꿨다. 근위병실, 축제·무도회 음악가들이 머물던 ‘북 치는 이들의 방’을 지나면 17세기 궁중 공방 작품인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걸린 어전 회의실, 프랑수아 1세와 아들 앙리 2세가 거주한 왕의 침실이 등장한다. 이곳에는 카라레 대리석으로 만든 베네치아풍 레오나르도의 흉상, 라파엘의 ‘대 성가족’ 원본 19세기 복제품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죽음’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프랑수아 기욤 메나조가 1781년에 그린 작품으로 프랑수아 1세가 숨을 거두는 다빈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앙부아즈성 오를레앙 왕가 집무실.
앙부아즈성 미님탑 테라스.
앙부아즈성 미님탑 테라스에서 본 루아르 강 풍경.

화려한 오를레앙가의 방들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서면 미님탑 지붕 테라스로 연결된다. 지나온 아름다운 정원과 견고한 성벽, 중세풍의 마을 건물들, 굽이쳐 흐르는 아름다운 루아르강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잊을 수 없는 여행의 추억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앙부아즈=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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