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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밥 주면 벌금?… 인도 거리에서 벌어진 종교 vs 보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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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19 16:35:24 수정 : 2025-08-19 16:57:49
배주현 기자 jhb9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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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비둘기 배설물로 폐렴이…” vs “비둘기에 먹이를 주는 것은 종교 의례”

 

최근 인도에서 비둘기에 먹이를 주는 것을 금지하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시민과 당국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급증하는 비둘기 개체 수로 인한 위생 문제를 우려한 정부의 조치가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종교적 의무’라는 오랜 관습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인도의 한 시민. 2000년 이후 인도의 비둘기 개체 수는 150% 이상 증가했다. 인디안익스프레스 홈페이지 캡처

18일(현지시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이달 초 인도 서부 뭄바이에서 수십 년 동안 운영된 비둘기 먹이 장소(카부타르카나)를 폐쇄하는 조치가 내려지면서 이에 반발한 수백 명의 인도 시민들이 경찰과 충돌했다. 일부 시위대는 ‘카부타르카나’를 가린 방수포를 찢거나 무기한 단식 투쟁까지 예고했고, 또 다른 시위에서는 15명의 시민이 구금됐다.

 

갈등의 발단은 공공장소에서 비둘기에 먹이를 주는 것을 금지한 법원 판결이었다. 인도 당국은 늘어나는 도심 내 비둘기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배설물로 인한 위생과 건강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보고 먹이 금지령을 내렸다. 먹이가 쉽게 구해지면서 비둘기가 과잉 번식하게 됐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BBC가 인용한 2023년 인도 조류 생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비둘기 수는 150% 이상 증가했고, 비둘기 한 마리당 연간 최대 15kg의 배설물을 남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둘기 배설물에는 최소 7종 이상의 감염병병원체가 포함돼 있어 사람에게 폐렴, 곰팡이 감염, 폐 손상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해 인도 델리에서 11세 소년이 비둘기 깃털과 배설물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과민성 폐렴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인도의 호흡기 전문의 RS 팔 박사는 BBC에 “비둘기에게 직접 먹이를 주지 않아도 베란다나 창틀에 남는 배설물로 인해 과민성 폐렴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종교계와 동물 애호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비둘기가 오랫동안 인도의 문화와 일상에 깊이 자리잡아왔다는 이유다. 게다가 인도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종교적 의무로도 여겨진 탓에 “평화와 충성의 상징인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자비로운 행위를 막아서는 안된다”며 항의에 나섰다. 자이나교도, 힌두교, 이슬람교도들은 길 잃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경건한 의무로 받아들인다.

 

40년 동안 비둘기에게 먹이를 준 사예드 이스맛 씨는 “비둘기는 무고하다. 나는 이들을 가족처럼 여긴다”라고 말했다. 동물 애호가 모하마드 유누스도 “15년 동안 비둘기와 함께 했는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었더라면 나부터 아팠을 것”이라고 BBC에 토로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특정 시간에만 먹이를 주자’는 절충안이 떠오른다. 동물보호단체 PETA 인디아의 우지왈 아그레인은 “아침과 저녁으로만 제한적으로 먹이를 준다면 공중보건과 동물과 감정적 유대를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뭄바이 고등법원은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을 마련하도록 명령하면서 뭄바이시 당국은 절충안을 검토 중이다.


배주현 기자 jhb9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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