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 들녘에 들어서자,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먼저 기자를 맞았다. ‘댕댕이장 백길자의 집’ 안내판을 보고 따라 들어가니, 집 마당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충청남도 무형유산 제31호 ‘홍성댕댕이장’ 보유자인 백길자(77) 장인과 전승교육사인 동갑내기 남편 김성환씨가 입추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뜨거운 햇살 아래 댕댕이덩굴을 가마솥에 삶느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집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댕댕이장’은 섬세한 짜임이 가능하고 강한 내구성을 가진 댕댕이덩굴을 이용해 바구니·채반·삼합 등 생활소품을 제작하는 장인을 말한다. ‘홍성댕댕이장’ 백 장인은 현재 이 전통을 계승하는 거의 유일한 장인으로, 댕댕이덩굴뿐만 아니라 싸리·보릿짚·밀대 등 다양한 재료로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댕댕이덩굴은 한자로 용린(龍鱗)·상춘등(常春藤) 등으로 불리며 지방에 따라 경남에서는 장태미, 제주에서는 정당·정등 등으로 알려져 있다. 줄기는 내구성이 강하고 탄력성이 매우 좋으며 축축한 상태에서 잘 구부러지는 특징이 있어, 풀 공예 재료 중 장점이 가장 많은 재료이다. 또 줄기의 직경이 2㎜ 미만이므로 공예품을 만들면 그 짜임새가 섬세하고 고운 질감을 준다. 이러한 장점으로 우리 선조들은 댕댕이덩굴로 삼태기·바구니·채반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해 왔다.







“고향이 당진인데요. 어릴 때 제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필요한 용품을 댕댕이덩굴로 만들어 사용했어요.” 백 장인은 말을 하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저도 아버지가 만드는 거 보면서 배웠구요. 뭐 특별할 거 없는 기술인데, 만들기 시작한 지 65년이나 지났네요.”
댕댕이공예의 과정을 보면 재료 채취 및 손질-기본 엮기 기법을 한 뒤 마지막으로 작품의 형태를 고정하고 조정해 완성한다. 과정이 간단해 보이지만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제가 만들지 않으면 댕댕이공예의 전통이 사라질까 봐 걱정이에요. 전승교육사인 남편이 야산에서 채취도 해주고 힘이 드는 일을 도와주고 있어서 그나마 조금씩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막내아들(김기산·34)이 이수자로, 수원에서 직장 생활하며 틈틈이 내려와 잊혀가는 전통을 이어주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엄마와 같이 해주니 고맙죠.”
댕댕이덩굴을 입에 물고 작업을 이어가는 백 장인은 인터뷰 중에도 정확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매판(맷돌로 곡식을 갈 때 까는 판)을 엮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특한 막내아들을 이야기할 때는 얼굴에서 어떤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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