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은 끝나지 않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2023)의 후속작 ‘나는 생존자다’가 15일 공개됐다. 2년 전 큰 반향을 일으킨 ‘나는 신이다’가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 정명석 등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조명했다면, 이번 시즌은 보다 확장된 스펙트럼으로 한국 사회의 참혹한 사건과 그 생존자들을 조명한다.

새 시즌은 JMS를 비롯해 부산 형제복지원, 지존파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사회의 참사를 다룬다. 영어 제목은 ‘생존자의 메아리: 한국의 비극 속으로(The Echoes of Survivors: Inside Korea’s Tragedies)’.
‘나는 신이다’에 이어 이번 시즌 연출을 맡은 조성현 PD는 전작에 출연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언한 홍콩인 메이플 입이 온라인상에서 공격을 받는 것을 보고 이번 시즌의 키워드로 ‘생존자’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조 PD는 지난 13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메이플은) 인터넷 댓글에서 ‘바보같이 사이비에 빠진 여자’로 조롱당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피해자’로 명명해선 안 될 인물”이라며 “그녀 덕분에 대한민국은 중요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생존한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지옥, 하지만 생존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깨달음”을 듣고자 했다고 밝혔다.
3∼4화는 JMS에 초점을 맞춘다. 전작 공개 이후 새롭게 취재된 JMS의 실체와 메이플의 법정 투쟁 등이 중심이다. 전 시즌을 시청한 후 제작진에 연락한 또 다른 생존자들의 증언도 새롭게 담겼다.
다큐는 전직 검찰 고위 인사와 정명석의 유착 의혹, JMS를 수호하는 신도 경찰 조직의 역할도 담고 있다. 다큐 제작 도중 내부 정보를 교단에 유출한 ‘스파이’ 프리뷰어의 실체도 공개된다. 이를 통해 JMS가 ‘정명석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교단 내부에 ‘해결사’ 조직을 운영해왔다는 정황도 드러난다.
정명석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명석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수사·재판 지연 전략을 펼쳤고, 신도들의 2차 가해도 이어졌다. 메이플이 증거로 제출한 성폭행 현장 녹음 파일을 등사해 달라는 정명석 측의 요구를 재판부가 수용해 메이플이 절망하는 장면이 다큐에 담기기도 했다. 해당 파일은 신도들 사이에 퍼져 메이플을 향한 2차 가해 도구로 사용됐다고 한다.
다큐는 수많은 위협과 협박 속에서도 싸움을 이어간 생존자 메이플의 삶을 따라간다. 극 후반에는 메이플이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연인에게 청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조 PD는 “메이플이 올 12월에 엄마가 된다”고 전했다.

1∼2화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 선도’ 명목으로 아동을 포함해 약 3만8000여명이 납치·감금 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고, 공식 사망자만 657명에 달한다.
강제노역·구타·고문·성폭행·암매장…. 피해자들은 참혹한 과거를 직접 증언한다. 일부는 정신질환을 앓게 됐고, 강간으로 낳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하는 이도 있다.
형제복지원 인권 유린 사실은 1987년 세상에 드러났으나, 원장 박인근(2016년 사망)은 불법구금이나 폭행, 사망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업무상 횡령 등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는 데 그다.
‘복지재벌’로 수백억 원 규모 재산을 축적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인근의 유족은 호주에 100억 원 이상 가치가 있는 골프연습장과 스포츠센터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PD는 한 피해 생존자와 함께 호주까지 찾아가 박인근의 유족들을 만나지만, 사과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박인근의 막내아들 박천광은 카메라 앞에서 형제복지원은 국가와 부산시가 함께 만든 일이라는 취지로 증언한다. 박인근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산 별장을 드나들 정도로 권력과의 유착이 깊었다는 것. 조 PD는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용기가 이 나라에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나는 생존자다’는 종교, 국가, 사회 시스템이 자행한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생존의 기록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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