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안공근 등 피신 적극 지원
美 사회에 임정 승인 중요성 전파
한·미 협회 뉴욕지부 회장 활동도
보훈부, 독립유공자 311명에 포상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신을 도왔던 미국인 제랄딘 피치 여사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는다. 피치 여사는 미국 미시간주 출생으로 앨비언 대학을 졸업하고 감리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됐다. 그녀는 남편인 애쉬모어 피치와 1924년 결혼했고,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1932년 4월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거가 발생하자 피치 부부는 김구 선생과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 등 임시정부 요인 4명을 한 달 동안 집에 숨겨 일제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일본인 스파이에 의해 위치가 노출되자 피치 여사는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 임시정부 요인들을 상하이에서 탈출시켰다. 특히 피치 여사는 김구의 부인인 척하며 감시를 피했다. 훗날 김구 선생은 피치 부부의 도움을 받은 사실을 백범일지에 자세히 기록했다. 김구 선생은 “부인은 자동차에서 나와 부부인 양 나란히 앉았고, 피치 선생은 운전사가 돼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고 설명했다. 김구가 작성해 발표한 ‘훙커우 공원 투척 사건의 진상’도 피치 여사가 번역했다.

피치 여사는 이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 1940년대 한국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한·미 협회의 뉴욕지부 회장으로 활동했다.
임시정부와 미국의 언론들을 잘 알고 있던 피치 여사는 일본의 불법적인 강점과 독립의 당위 등에 대한 내용을 뉴욕타임스 등에 직접 기고하는 등 미국 사회에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승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
또 피치 여사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상하이 기독교청년회(YMCA)에서 활동한 그는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쑨원과 장제스, 장췬 등 중국 국민당 정부 인사나 사업가들과 독립운동가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왔고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과 친분을 쌓았다.
임시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승인이 녹록지 않자 피치 여사는 직접 쑹메이링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는 이승만과 김구처럼 한국의 독립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헌신하며 희생하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며 국민당 정부가 움직이면 서방 국가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하기도 했다.
남편인 조지 애쉬모어 피치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신을 도운 공적을 인정받아 앞서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서훈됐고 부인 피치 여사에게도 뒤늦게 독립장이 수여되는 것이다.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피치 여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 311명을 포상한다고 13일 밝혔다. 포상 대상자 중 건국훈장은 71명(독립장 2명·애국장 13명·애족장 56명), 건국포장은 22명, 대통령표창은 21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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