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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호의플랫폼정부] 관료제 둥지, 이번엔 깨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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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13 22:36:28 수정 : 2025-08-13 22: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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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판단·행동 제한해 기계적 존재로 전락
단순한 규칙 변화 넘어 근본적인 변혁 필요

1975년에 개봉된 켄 키시의 동명 소설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가 있다. 폐쇄된 환경인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권위주의적 시스템과 인간성 상실을 날카롭게 파헤친 내용이다. 시간이 흘러 행정학을 공부하던 중 우연히 접했는데 관료제 병폐에 대한 예리한 고발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영화 속 정신병원은 관료제 조직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정신병원의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논리적인 절차와 규칙들에 따라 환자들은 조종되고 이유도 모른 채 통제되며 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이 억압된다. 관료제 조직에서 개인은 기계적인 규칙과 절차 속에 갇히게 되며 베버가 오래전 묘사한 것처럼 기계의 톱니바퀴 하나로 전락한다.

권위적인 수간호사 레체드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환자들의 삶을 철저히 통제하며 그들의 자유와 인간성을 억압한다. 이는 관료제 조직에서 권위가 개인의 판단과 행동을 제한하고 상명하복을 강화하며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결국 사람들은 시스템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기계적 존재로 변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맥머피는 환자들이 따라야 하는 정신병원의 규칙이나 절차가 비합리적이고 무의미함을 깨닫고 그들을 대신하여 병원 시스템과 싸우며 억압적인 구조를 깨뜨리려 한다. 정신병원 운영의 목적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원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으로 바뀌는, 이른바 목적-수단의 전도현상으로 변질된다. 맥머피가 겪는 갈등의 원인이 바로 이런 관료제의 모순임을 느낄 때 가슴이 답답해진다.

맥머피는 자신이 있는 곳이 단순한 정신병원이 아니라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체제 그 자체임을 점차 깨닫는다. “그래도 나는 노력했다”라는 그의 중얼거림은 물리적·정신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체념과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음을 상징한다. 결국 맥머피는 병원 측의 강제적인 뇌 절제 수술 후 식물인간이 되며 동료인 추장 브롬든의 손에 의해 안락사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는 그의 끊임없는 시도와 억압적 권위에 대한 도전은 “나는 인간이다”라는 절규를 통해 관료제 병폐에 대한 상징적 투쟁으로 읽힌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단순한 규칙 변화를 넘어 사고방식과 문화의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관료제 병폐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직은 생물과 같아서 유연해야 생존한다. 단지 규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화 자체를 혁신하지 않으면 조직은 안으로 썩는다.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문화, 실수와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며 경직된 관료적 사고방식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이다. 지메일이나 구글 뉴스 등 구글 성공의 시작은 직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문화였음을 우린 기억한다. 자유와 책임을 핵심 가치로 삼는 넷플릭스 역시 어떤 문화의 조직이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전자정부의 가속화는 대전환 시대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혁신이란 이름으로 기존 정부에 첨단 기술로 옷만 입히려는 반복적인 시도 이전에 근대 관료제 정부의 틀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 그리고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먼저이다. 우리 정부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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