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 6·27 부동산 대책 이후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큰 규모의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세입자가 늘어났다.

집주인들 사이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선호하는 월세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전환으로 보고 있다.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확정일자를 받은 전·월세 계약 건수는 총 53만6417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전세는 19만2795건(35.94%), 월세는 34만3622건(64.06%)이다. 전체의 약 3분의 2가 월세 계약이었다. 세입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한 셈이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도 뚜렷한 변화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총 45만120건 가운데 전세가 18만1297건(40.28%), 월세는 26만8823건(59.72%)으로 집계됐다.
당시에도 월세 비중이 높긴 했지만 60%를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월세 쏠림이 본격화되며, 올해 들어서는 월세 비중이 60% 중반대에서 고정되는 추세다.
◆‘준전세’가 대세…“14억 전세에도 월세 붙는다”
최근에는 보증금 위주의 전세에서 월세가 일부 포함된 ‘준전세’ 형태의 계약도 흔해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는 지난 7일 보증금 8억원에 월세 150만원 조건으로 신규 계약됐다.
같은 단지 전용 110㎡는 보증금 14억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월세 40만원을 추가하는 조건으로 계약이 갱신됐다. 과거 전세 계약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변화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급등한 전셋값이 있다. KB부동산 통계 자료를 보면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4944만원으로 나타났다.
강북 14개구는 5억3427만원, 강남 14개구는 7억5227만원 수준이다. 수도권 평균 전셋값(4억2785만원)과 비교해도 2억원 이상 높은 편이다. 세입자들의 자금 마련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집주인들의 전세 선호도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전세 보증금을 활용해 추가 부동산 투자를 노리는 ‘레버리지 전략’이 가능했다. 보유세·양도세 등 세금 부담이 크게 늘며 ‘똘똘한 한 채’ 보유 전략이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보증금을 통한 자산 증식이 어려워졌고, 대신 월세를 통한 현금 흐름 확보가 선호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6·27 부동산 대책도 전세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요 내용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전세 퇴거 대출 한도 1억원 제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대출 보증 비율 80%로 축소 등으로, 세입자들의 전세 자금 조달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전세 종말은 시작됐다”…전문가들 “장기 흐름 될 것”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일시적인 시장 반응이 아닌 장기적 구조 변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의 월세화는 단순한 시장 유행이 아닌 정책, 금리, 세금, 자금 조달 여건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구조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입자들은 자금 여력이 줄었고, 집주인들은 전세보다 월세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는 시대가 됐다”며 “당분간 이 흐름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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