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AI 등 규범 주도 강조
노벨상 수상자 “韓, 창조적 사회
APEC 대화 이끌 잠재력 있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2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 산업·무역·안보 정책은 더 이상 별도로 다룰 수 없다”며 “전략 산업을 중심에 두고 무역 협상, 해외 투자, 공급망 회복력, 기술 협력을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 본부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한국경제인협회(FKI)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32차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펙) 총회 특별연설을 통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조선, 반도체, 에너지 등 전략산업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 통상환경이 구조적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짚었다. ‘경제 이슈의 안보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인공지능(AI)·디지털 기술 혁신 가속화’를 3대 변화 흐름으로 꼽았다. 여 본부장은 “무역, 기술, 공급망이 더 이상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 됐다”면서 “최근 보호무역 기조하에서는 상호의존성을 무기로 삼아 자국 이익을 위해 상대국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무역의존도와 제조업 비중이 높아 공급망 차질, 심화하는 지정학적 경쟁, 경제 안보 리스크에 더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여 본부장은 향후 한국 통상 정책의 방향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아세안·인도 등 글로벌사우스와 협력을 확대해 공급망·시장을 다변화하고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통상·산업·안보를 결합한 융합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기후변화, 공급망, AI 등 신통상 규범 형성을 주도해야 한다고 봤다.
이날 총회에서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로빈슨 교수는 한국에 대해 “휴대폰, 선박, 자동차뿐만 아니라 K팝, 오징어게임, K뷰티까지 경제적·문화적으로 놀랍도록 창조적인 사회”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내에서 다양한 대화와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다자주의의 위기는 기존 제도가 모든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자발성, 개방성, 비구속성, 합의 기반 협력이라는 에이펙의 열린 지역주의 원칙은 다자주의의 쇠퇴와 보호주의 강화 등 닫힌 지역주의로 회귀하려는 글로벌 흐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 설립된 PECC은 정부, 산업계, 학계를 아우르는 민간 경제협력 포럼으로, 에이펙의 정책 싱크탱크다. 올해 10월 개최되는 2025 에이펙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20년 만에 의장국을 맡게 됨에 따라 PECC 회의도 서울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경제인협회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번 총회의 결과물은 ‘여의도 선언문’으로 정리돼 에이펙 정상회의에 제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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