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제재 피하려 은폐 수두룩
40대 A씨는 2023년 상차 작업 중 추락해 다치는 사고를 겪었다. 27일간 입원하며 치료받은 그는 이 기간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3000만원이 넘게 진료를 받았다. 산업재해로 산재보험을 청구해야 하지만 건보를 부적절하게 받은 사실이 적발돼 전액 환수조치됐다.

최근 5년반 동안 A씨처럼 산업재해를 건강보험 진료로 처리하다 적발된 사례가 23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사업주는 산재 발생 시 보험료 인상과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사고를 고의로 은폐한 것으로 조사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공단이 적발한 산업재해 은폐·미신고 건수는 총 23만6512건이다. 연평균 4만3000건으로, 5년반 동안 부당 지급된 액수는 약 328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0년 2만9734건에서 2022년 5만1800건까지 적발 건수가 급증했다가 2024년엔 4만8020건이 적발돼 4년 만에 61.5%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적발금액도 2020년 45억원에서 2024년 61억원으로 34.8%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중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은 근로자는 산재 처리를 통해 산재보험에서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을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과 중복해서 보장되진 않는다.적발 사례 중에는 근로자가 산재임을 인지하지 못해 일반 진료를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사업주가 산재 처리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사례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재가 은폐되면 피해 근로자는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또 건강보험 재정에서도 지급할 필요가 없는 치료비가 지출돼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건보공단이 2018년 서울대에 의뢰한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방지방안 연구’에 따르면 산재 은폐로 인한 건보 재정 누수 금액은 연간 최소 277억원에서 최대 321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건보공단은 이에 관한 연구를 최근 5년간 실시하지 않다가 올해 4월 다시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재해사고에 대해 강력한 엄벌을 지시하고 있지만, 산업재해를 은폐하려다 적발된 것만 매년 4만~5만건씩 발생하는 등 현장에서는 산업재해 사고를 감추기 급급한 실정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미신고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손실 문제를 넘어 더는 산업재해가 은폐·미신고되지 않도록 의료기관 진료 시 산업재해와 건강보험을 즉각 구분하는 등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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