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노조 등 기자회견 “구속기소·엄벌 탄원” 촉구
전국 교사 7000여명 탄원 참여
아동복지법 개정 요구도
“학부모의 살해 협박에 결혼식장에 경호원까지 고용했습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교사에 대한 무고성 아동학대 고소와 살해 협박까지 이어져 교사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제주 모 초등학교 A 교사는 지난해 4월 교육청을 통해 특정 학부모가 자신의 소속과 연락처를 알아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후 해당 학부모는 학교를 통해 연락을 시도하고 A 교사의 연락처를 알아내 메신저앱인 카카오톡으로 직접 연락을 해왔다. 당시 A 교사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카카오톡에는 프로필 사진과 결혼식 정보, 배우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노출돼 있었다. 학부모는 결혼식장에 찾아와 훼방을 놓겠다는 협박을 했고, 그 위협은 A 교사 부부에게 치명적인 불안과 공포를 안겼다. 결혼식 날이 다가올수록 혹시나 결혼식장에서 위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극심한 두려움 속에 지냈다. 교육청과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고, 결혼식 당일에는 경호원을 고용해야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지난해 5월 22일 교육청에서 학부모와의 대면을 결정했다.
그 자리에서 학부모는 A 교사에게 ‘죽이겠다’, ‘결혼식에 가서 나팔을 불어주겠다’, ‘네 아이는 나보다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 등 살해와 조롱이 섞인 폭언을 쏟아냈다. 또 ‘결혼 잘 해보라’, ‘결혼하고 제발 나보다 일찍 죽어라’와 같은 발언으로 인해 A 교사는 신변의 위협까지 느껴야 했다.
이 사건 이후, A 교사는 결혼식 당일을 무사히 넘겼지만 부부의 삶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찼다. 근무지와 집 주변에서 학부모와 마주칠 가능성에 항상 긴장했으며 수업 중 연락이 오면 몸이 굳고 긴장돼 휴대폰을 항상 무음으로 설정하고 생활했다.
A 교사는 대면 이후 1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아동학대로 신고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민원 자료를 확인하니, 그 안에는 A 교사와 가족에 대한 살해 협박이 담겨 있었다. 태어날 아기에 대한 살해 협박은 A 교사와 아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줬다. A 교사 부부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사실이 아닌 아동학대 고소로 인해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 대한 두려움과 억울함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학부모 “수업 방식, 반 편성 때문에 아이 지병 발현” 주장…교사 등 ‘혐의 없음’
A 교사처럼 이 학교 교사 10명이 졸업생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로 집단 고소당해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해당 학부모는 자녀가 초등학교 재학 중 담당했던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담임교사를 아동학대, 직무 유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학교 행정실장과 교장, 교감, 교육청 직원까지 12명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아동학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다. 학부모는 수업 방식, 반 편성 때문에 아이의 지병이 발현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사와 교직원들은 모두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학부모는 교육부와 교육청에 100건이 넘는 민원을 접수했고 반복된 민원에 민원 업무 담당자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고충을 겪었다.
현재 해당 학부모는 협박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제주교사노동조합과 초등교사노동조합,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11개 노조 단체는 11일 제주동부경찰서 앞에서 무고성 고소와 살해 협박 사건 가해자 구속기소와 엄벌 탄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교사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등으로 무더기 고소한 학부모의 엄벌 탄원에 참여한 전국 교사는 7609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정우 제주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피해 교사들이 사건 이후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으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으며 학교 출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사노조 등은 해당 학부모의 무고와 협박 혐의에 대해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와 기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해달라고 검경에 요청했다.
이어 제주도교육청은 무고성 악성 민원에 대해 기관 차원의 법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교사노조 등은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교원에 대한 무고·협박에 대한 가중 처벌 규정 마련, 교육공무원 보호법의 실효성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동복지법 개정도 요구했다.

교사노조 등은 “의심만으로 아동학대 고소에 너무도 쉽게 이를 수 있는 현행 아동복지법의 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아동복지법 제2조에 따른 교육감 의견서를 수사기관이 수사 진행과 기소를 위한 주요 판단 요소로 보도록 의무화해야 하고, 교육감 의견서 작성·제출에 관여한 소속 위원회 위원이 의견서 작성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면책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같은 사안을 반복해서 고소하는 경우 경찰에서 추가 수사 없이 각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보미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은 “이 사건은 단순한 민원 문제가 아니라 교사의 생명과 명예, 교육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안이다. 이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한국 교육 전체의 신뢰와 존엄이 걸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교사가 이유 없이 고소당하고, 반복적인 협박에 시달리는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지켜내고, 교육을 지속할 수 있겠냐”라며 가해자의 무고·협박 혐의에 대해 엄정한 수사와 더불어 제주도교육청의 악성 민원에 대한 기관 차원의 법적 대응 체계를 구축을 요구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