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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줄기 가늘게 찢어 연결하듯… 전통을 담아 미래를 짠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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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10 11:00:00 수정 : 2025-08-10 09:18:23
안동= 글·사진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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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금소마을 여인들의 삶 깃든 ‘안동포’

낮엔 밭일하고 밤엔 늦은 시간까지 삼을 삼아
길쌈하는 여인들의 하루는 쉴틈 없이 고달파
대마를 원료로 짠 마직물 안동포 ‘삼베’로 불려
2017년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 명맥 이어가
전시관·전수교육관 2곳서 기술 전수 안간힘
낮에는 밭일하고, 밤에는 잠을 미뤄가며 늦은 시간까지 삼을 삼았지. 삼을 이어붙이기 위해 가닥을 이로 찢고 침을 발라 연결하는 작업은 입술이 쓰리고 아팠어. 무릎 위에 삼을 비비는 과정은 마찰로 인한 고통이 따랐고. 모깃불 피워놓고 자식 자랑과 남편 이야기하며 삼 삼던 시간은 고달픔 속에서도 이웃 간의 정을 나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길쌈하는 여인들은 하루도 쉴 틈 없이 바빴지. 하지만 안동 장날 베전골목에 삼베 팔아 논밭 사고 자식들 학비 내고 나면, 언제 고생했나 싶어….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이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강사인 박순자(75)씨가 안동 임하면 금소마을 안동포 전수교육관에서 전통 베틀로 베짜기를 하고 있다. 안동포 짜기는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이자 전통 섬유기술의 백미다.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이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강사인 박순자(75)씨가 안동 임하면 금소마을 안동포 전수교육관에서 전통 베틀로 베짜기를 하고 있다.
안동포 전수교육관에서 전수교육을 받고 있는 김영숙(68)씨가 베짜기를 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이자 경상북도 무형유산 전승교육사 박순자(75)씨는 “대마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22살에 강원도에서 금소마을로 시집와서 안동포를 처음 접했다. 매일 이어지는 고된 작업에 눈물을 삼키는 날이 많았다”며 안동포와 함께 살아온 지난 날을 회고했다. 대마 줄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 끝을 가늘게 이로 찢어야 하는데, 평생 삼을 물다 보면 이에 골이 생긴다. 우리가 힘들 때 ‘이골난다’고 표현하는 그 이골이다.

안동포는 대마(삼)를 원료로 짠 마직물로, ‘삼베’ 또는 ‘베’라 불린다. ‘안동포’는 우수한 품질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어 지역을 대표하는 직물로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의 복식으로,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사용되며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안동포는 차갑고 얇지만, 그 안에는 밤을 지새우며 삼을 삼던 여인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천년의 전통과 숨결이 담겨있다. 안동포 제작은 파종 및 수확→삼 찌기→쪄낸 삼 말리기→삼 껍질 벗기기→겉껍질 훑어내기→계추리바래기(표백)→삼 째기→삼 삼기→베 날기→베 매기→베 짜기→빨래→색내기 등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임능부(74)씨가 ‘삼 삼기’를 시연하며 침을 바르고 있다.
임능부(74)씨가 무릎에 두 가락의 삼을 올려 비비고 있다.
박순자(75)씨가 삼의 겉껍질을 훑어내고(벗기고) 있다.

안동포는 현재까지도 여름용 의복이나 수의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생산도 수요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안동포 한 필은 폭 38㎝, 길이 22m에 달한다. 장인의 손에서 1년에 고작 2~3필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국가무형유산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 임방호(62) 회장은 “수의를 만들면 1년에 15벌밖에 만들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는 중국산 수의와 안동포 수의를 고르라는데, 정작 진짜 안동포는 납품된 적이 없다. 검증도 없이 ‘안동포’라는 이름이 남용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과거에는 금소마을 약 350가구, 700여명이 대마를 재배하고 안동포를 짰지만, 이제는 작업에 참여하는 인원이 40여명에 불과하다. 안동포는 1975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됐다.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2017년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를 결성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19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는 안동포 전시관과 전수교육관 2곳에서 전수 교육을 진행하며 기술 전수에 힘쓰고 있다. 교육생 중 40대 2명이 전통 계승의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금소마을 ‘안동포 작은 박물관’에 전시된 남자 삼베 저고리와 바지, 여자 삼베 저고리와 치마.
‘안동포 작은 박물관’에 전시된 안동포 제작 도구들.
새수에 맞게 날실을 끼우는 도구. 날실의 올 수와 밀도에 따라 바디 살의 개수와 살 사이 폭이 다르고, 새수가 높아질수록 바디가 고와진다.

보존회는 2024년부터 안동포 제작을 활용한 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본격화했다. 금소마을의 옛 지명 ‘금양(錦陽)’과 홍콩 영화 ‘화양연화’에 영감 얻어 프로그램 이름을 ‘금양연화’라고 정했다. 금소마을에서 기억이 누군가에게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임 회장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양한 제품 개발과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 젊은 세대의 참여 유도가 절실하다”며 “안동포의 정통성과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동= 글·사진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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