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을 보면 아프다
나는 아프고 싶을 때 이 못에 온다
못의 가장자리를 둘러 핀
붓꽃들
이번 생은
물속에서 하는 말처럼
물속에서도 할 수 없는 말처럼
모두가 피했던 질문이 있었다
붓꽃의 자리 가장자리에서
물의 소리를 지키려 한다
믿는다면
그 한 사람은 들었다

가장자리를 빙 둘러 붓꽃이 피어 있는 여름의 작은 못을 상상한다. 그리고 거기 부옇게 괸 못물에 그림자를 띄워 두고 가만히 선 한 사람을. “나는 아프고 싶을 때 이 못에 온다” 하는 그의 이야기는 아플 때마다 이 못에 온다, 와서 붓꽃처럼 멍든 표정으로 서 있곤 한다, 하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그에게는 끝내 지키고자 하는 어떤 말이 있고. 그 말은 남몰래 깊은 곳에 잠긴 “물의 소리” 같고. 과연 어떤 소리일까. 막연히 짐작해 볼 따름이지만, 어쩐지 아주 막막하지만은 않다. 채 말이 되지 못한 아픔이 진하게 녹아 있는 그런 물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떠올릴 수 있는 것. 저마다 자신만의 못과 물이 있는 것.
시 속 물의 소리는 시 자체에 대한 은유로 다가오기도 한다. “붓꽃의 자리 가장자리에서” 시인이 자신의 생을 다해 지키려 하는 소리. 그것을 누군가는 결국 듣게 된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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