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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카메라 앞에 살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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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26 22:58:26 수정 : 2025-06-26 22: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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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유현목 감독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1925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2009년 경기도에서 작고했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 23년간 일제 치하에서 살았고 해방을 맞이했으며 한국전쟁을 겪었다. 1960년대 한국 사회의 근대화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영화를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진행 과정을 관찰했고 그것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는 20세기 격동의 한국 사회와 한국영화의 역사를 살아낸 산증인이었다. 그의 대표작 ‘오발탄’은 그를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개척자로 공인했고 지금도 한국영화 베스트10을 선정하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킨다.

 

그는 평생 주류 영화산업 안에서 작업했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주류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난 독립 영화 제작을 추구한 예술인이었다. 1960년대는 영화진흥공사에서 녹음과 편집 등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누구도 그 바깥에서 작업할 수 없었고 당연히 엄혹한 시대의 검열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 서슬 퍼렇던 시대에 그는 ‘은막의 자유’를 발표하여 입건되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그는 다른 감독들이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고 행인들 사이에 스타 배우를 세워 놓고 촬영했다. 그의 걸작 ‘오발탄’도 그렇게 탄생했으니 그의 영원한 페르소나인 김진규 역시 그렇게 거리를 배회하며 오발탄을 찍어야 했다.

 

물론 그가 사회 비판적인 영화만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코미디, 멜로드라마, 문예영화, 반공영화 등 다양한 장르 영화를 연출했다. 산업 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그는 ‘공처가 삼대’ 같은 자신의 코미디 영화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논의에서 이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현재 평단은 다른 평가를 내리지만 감독 스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 안에 이 영화들을 포함시키기를 주저했다.

 

그렇다면 그가 추구한 리얼리즘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카메라 앞의 모든 것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가 추구한 것은 눈에 보이는 리얼리즘이 아니었다. 그는 ‘자명한 현실’을 부정했고 그의 영화 역시 외양의 객관적 묘사와 거리가 멀었다. 일제 시대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집안이 거덜 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실에서 포스트 식민주의 1세대 감독으로 카메라를 잡았다. 한국 현대사가 야기한 트라우마는 그에게 1차대전 패전 후 독일인들의 피폐한 심리를 그린 독일 표현주의에 깊이 감응하게 했고 그 영향은 그의 영화에 짙게 드리워 있다. 그에게 트라우마와 역사의 상처는 주관적, 심리적 풍경의 묘사를 통해서 재현 가능한 것이었다. 객관과 주관의 경계는 모호했고 그는 현실에 부재한 것을 포착하고자 했다. 이미지와 사운드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사유하며 “영상적으로 사고하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김성수, 유하, 김대현 등 현재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감독들은 유현목 감독에게 영화를 배우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한 후학들이다. 유현목 감독 탄생 100년을 기념해 그들을 중심으로 작지만 특별한 행사가 마련되었다. 6월26일∼7월5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유현목 탄생 100주년전: 시대, 장르, 실천”이 그것이다. 40년에 걸친 그의 영화 44편 가운데 대표작 18편이 상영된다. 이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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