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 생략 첫날부터 GBC 화상회의
전세계 17개국 22곳서 수출거점 역할
디지털 플랫폼 통해 맞춤형 지원 수행
미래산업 적합 인재 육성 ‘라이즈’ 집중
AI·바이오 등 1.2조 투자 ‘G펀드’ 성과
“현장 목소리 적극 반영 탁상행정 탈피”
“과거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13년 개념을 처음 접했는데 사기처럼 느껴지더군요. 2017년에는 스스로 인공지능(AI)에 빠져 여기저기 소개했는데 ‘이게 뭐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죠. 사실 미래 신산업 분야에서 먹거리는 다 나와 있어요. 남보다 앞서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우리 행정은) 기술이나 변화의 흐름에서 종종 뒷북을 치곤 합니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김현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은 25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대내외 경제위기가 극심한 국내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기재부 선배인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지난해 경제부지사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그는 올해 3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경과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1일이 경과원장 취임 100일이었다. 경과원 역시 올해로 출범 9년째가 됐다.
중앙부처 관료로 잔뼈가 굵은 김 원장이지만 요즘 체감하는 기업들 어려움이 적잖아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도내 중견·중소기업을 돌며 매주 월요일 간부회의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현장에선 “닫혀 있는 줄만 알았던 공공기관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 일었다.
그는 첫 출근 때 취임식을 생략한 채 해외 경기비즈니스센터(GBC) 소장들과 화상회의를 열었다. 도내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 방안을 논의하며 공식 일정을 시작한 셈이다. 도의 수출 전진기지인 GBC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주요 수출거점 17개국에서 22곳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 원장은 “악화한 체감 경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국내 대기업에 매달리기보다 해외로 눈을 돌려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영토를 넓혀야 한다”면서 “기회수도 실현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발로 뛰며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GBC 운영의 성과를 알려달라.
“GBC는 경과원의 기업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표 사업이다. 세계 각지에서 환경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며 경기도의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단순한 해외 거점이 아니라 개별 대응이 어려운 도내 중소기업을 위해 수출대행, 온라인 전시회, 화상상담, 통상촉진단 운영 등을 지원한다. 지난해에만 1만2000개 이상의 도내 기업이 GBC를 통해 1억6000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연말까지 미국 댈러스, 칠레 산티아고, 폴란드 바르샤바에 3곳이 추가로 개설된다. 글로벌화와 몸집 키우기가 현재로선 우리 중소기업들의 탈출구라고 본다. 디지털 플랫폼인 ‘GBC 프라임’을 통해 비대면 수출 상담과 바이어 매칭도 지원하는데, 기업 수요에 기반을 둔 맞춤형 수출 지원 플랫폼을 고도화하겠다.”
―지역·대학 혁신을 위한 라이즈(RISE) 사업을 독자 수행하고 있는데.
“경과원은 올해 도의 RISE 사업을 주관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RISE의 핵심은 ‘휴머노믹스’(인간중심경제)에 있다. 지역 기반산업과 미래전략산업에 적합한 인재를 육성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연결한다. 하루 이틀 만에 인재를 양성할 순 없지만 산업·대학·지역 간 지속 가능한 선순환 생태계를 갖추는 게 목표다. 국비 135억원을 추가해 모두 658억원 규모의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는 올해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최우수 지방자치단체에 선정됐다. 민·관의 유기적인 협업 덕분이다. 지난달 50곳의 도내 수행대학을 확정했다.”
―G펀드 투자유치도 경과원의 주요 성과 중 하나다.
“G펀드는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펀드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기업 투자유치 기반을 마련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 당초 2026년까지 1조원 조성이 목표였는데, 2년 앞당겨 지난해 말 1조2000억원을 조기 달성했다. 23개의 분야별 펀드는 AI를 비롯해 바이오,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 소재·부품·장비 등에 집중투자된다. 중소·벤처기업의 안정적 자금 조성에 일조하면서 수혜 기업 가운데 코스닥 등 IPO 상장 25곳, 코넥스 상장 4곳, 예비 유니콘 16곳이 배출됐다.”

―김 원장이 주목하고 힘쓰는 사업이 있다면.
“AI 중심 딥테크 스타트업의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 확대를 위한 ‘경기 스타트업 서밋’과 중소기업의 국내외 판로개척을 지원하는 ‘G페어(G-FAIR) KOREA’가 10월 수원컨벤션센터와 일산 킨텍스에서 각각 열린다. 경기북부 균형발전을 위해 전통제조업의 디지털 전환과 시설 현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에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없고, 대기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섬유·가구산업 등 특화산업에 쏠려 있다. 전시회 참가 지원 등 중소기업의 판로개척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곳 전통제조업에 디지털화를 지원하고 낙후된 설비를 개선해 새로운 산업으로 탈바꿈하도록 지원하겠다. 남부지역에서도 광교테크노밸리에 ‘바이오허브’ 등을 추진하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은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체감·책임감·확신은 현장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부처나 청와대에 있을 때는 정책을 기획하고 전략을 짜며 흐름과 수치를 살펴봤다. 내가 만든 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효과를 낼지 궁금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피부로 느껴보니 탁상행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나침반이 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최근 판로개척 못잖게 인력난 역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AI, 바이오, 반도체 등 신산업 분야에서 인력 양성과 기업 지원을 강화해 도의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 3000억원 넘게 조성된 AI, 바이오 관련 펀드를 적극 활용하겠다. 도의 경우 모든 사업이 조례로 묶인 데다 공공기관에선 사업들이 다 쪼개져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겠다. 조직원들의 동기를 자극하고 역량을 집중해 성과를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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