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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견해’의 결합, 이경노 백동 공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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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8 06:08:33 수정 : 2025-06-08 06: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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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견해’의 결합, 이제는 백동이다 !
조선 백동 공예품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
한국 금속공예의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 모색
‘두 번째 박여숙 간섭 이경노 백동 공예전’

이경노는 동이나 철, 백동 등 다양한 금속 재질을 다루면서 40여 년 동안 전통 금속공예를 계승 발전시켜온 장인이자 작가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전통 ‘단조(鍛造)’와 ‘조이(새김)’는 형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교한 기술과 힘겨운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는 기법이다.

 

‘백동 선각 희자문 팔각함’

먼저 형태 성형에는 단조 기법을 쓴다. 금속재를 두들기고 눌러서 의도한 모습을 구현해내는 단조는 망치로 두드릴 때 가하는 힘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육면체 등의 모양을 만들 때는 각각의 면을 형성하기 위해 얇은 판재를 접어도 끊어지지 않을만큼 얕은 깊이의 접이선을 정으로 조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판을 다루는 기술과 조각 기술,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경노의 조각 기술은 표면장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표면에 문양을 새기거나 쪼음질을 한 뒤 가는 실 형태로 가공한 은을 문양 형태에 따라 채워 넣는 입사기법에선 가히 극강의 절정에 달한다.

 

그가 전시장 가득 신작들을 풀어놓았다. 13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두 번째 박여숙 간섭 이경노 백동 공예전’에서다. 2018년 이후 7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자 박여숙과의 두 번째 ‘간섭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백동 선각 희자문 함’

‘간섭’이라니. 퍽이나 재미난 타이틀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경노의 ‘기술’과 박여숙의 ‘견해’를 버무렸다는 뜻이다. 간섭은 참견한다는 부정적 의미도 있지만, 사전을 보면 두 개의 파동이 한 점에서 만났을 때 합쳐지는 강한 진폭과 다양한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예술 분야에서 간섭은 협업이나 여러 악기를 통해 새로운 음율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지칭하는 등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이경노와 박여숙의 ‘간섭프로젝트’는 2015년에 시작됐다. 이경노가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뮤지엄에서 열린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15 - 수수 덤덤 은은’전에 초대작가로 선정됐을 때, 박여숙은 이 전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었다. 이를 인연 삼아 두 사람은 콜라보레이션 작품으로 제1회 후쿠리쿠공예전(2017), 청주공예비엔날레(2021), 진주공예비엔날레(2023), 서울공예박물관전(2024)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했다.

 

이경노는 1970년대 고가구 공장에서의 실무 경험을 시작으로, 서울시 무형유산 입사장 최교준의 문하에서 본격적인 전통 금속 기술을 사사 받으며 장인정신을 키웠다. 1987년 국가 지정 문화재수리기능자가 되어, 문화재 복원과 전승 공예의 최전선에서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왔다.

 

‘백동 선각 수복문 문서함’

그의 작업 세계는 전통 기법의 정수를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이를 단순한 재현이 아닌 창의적 재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차별성을 가진다. 그는 다양한 금속 재질을 자유롭게 다루며, 기물의 형태와 표면 장식 모두에서 높은 조형성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단단한 금속을 마치 유연한 재료처럼 사용하고, 입체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품은 작품들을 빚어낸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유물들은 자물통, 화로, 담배 대, 가구 장식 등 현대에 와서 쓰임이 사라진 물건들이다. 그는 전통 기술과 현대 조형감각을 융합해, 한국 금속공예의 미학적 가능성을 현재와 미래로 확장시키는 창조적 해석을 제시한다. 이같은 성향은 ‘간섭 프로젝트’라는 협업 구조 안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며, 한국 전통 공예의 현대 계승과 확산이라는 의미를 부여받는다.

 

‘백동 선각 나비문자문 삼층합’

이번 전시회에서는 2020년부터 집중해 온 백동(白銅) 공예작품들을 내놓았다. 높은 경도와 내구성 덕분에 실용성과 심미성을 모두 갖춘 백동은 동(銅)에 니켈을 합금한 금속으로 조선 말기부터 생활 기물과 가구 장석 등에 널리 사용되었으나, 만들기가 무척 어려운 탓에 지금은 거의 다루지 않는 재료가 되었다. 제작이 어려운만큼 작품수가 많지 않고, 이에 따라 자주 접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기술을 계승할 이들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로 꼽힌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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