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 나가!’
지난해 가을 두산과 KT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가 끝난 잠실 야구장 앞. 두산 팬 수십명이 모여 이렇게 외쳤다. 그 장면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그 고함이 이승엽 감독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을까?
두산 베어스 이승엽(49) 감독이 지난 2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했다. 두산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감독은 올 시즌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구단은 숙고 끝에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의 사퇴는 사실상 경질에 가깝다. 두산이 하위권으로 떨어진 뒤 유튜브를 비롯한 SNS상에서는 사사로운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의 수위가 높았다. 현역 시절 최고 인기를 누렸던 이 감독의 성품으로는 그런 비판을 견디기 쉽지 않았으리라.
한때 ‘국민타자’로 불리던 이승엽이 두산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많은 팬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두산에는 양의지, 양석환 등 거포뿐만 아니라 ‘두산 육상팀’으로 불리던 정수빈, 조수행 등 발 빠른 타자들도 있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 출신에 국가대표 4번 이승엽의 경험까지 합쳐지면 최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됐다.
2022 시즌 9위에 머물었던 두산은 이 감독이 지휘한 2023 시즌에는 5위, 지난 시즌에는 4위를 차지해 나름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 가을야구에서 KT에 당한 패배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올 시즌 초반 에이스 곽빈과 마무리 투수 홍건희의 부상으로 인해 팀이 무너졌다.
특히 투수 기용이 문제였다. 지난해 선발진 부상 속에서도 두산은 불펜 평균자책점 1위(4.54)를 기록하며 버텼다. 문제는 ‘혹사’였다. 이병헌은 77경기 등판, 루키 마무리 김택연은 65이닝에 투입돼 아예 뛰지 못하거나 지난해의 구위를 잃었다. 하는 수 없이 은퇴했던 노장 고효준(42)까지 영입했지만 불을 끌 수 없었다.
타격에서도 번트를 자주 대는 ‘스몰 야구’로 변했다. 최근 사퇴의 불씨가 됐던 최하위 넥센과의 경기에서 무사 2루, 무사 1, 2루에서 번트를 대면서도 점수를 내지 못하고 연패한 것이 이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
두산 야구는 잘 나갈 때 곰처럼 우직했다. 그리고 두산에서 성공했던 감독들 성향도 카리스마가 넘쳤다. 김인식, 김경문, 김태형 감독 등이 그렇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선수들이 직접 감독을 뽑는 관행이 있었다. 이 감독처럼 구단주가 직접 선임한 케이스도 있지만 선수투표에 의해 1순위로 추천된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을 때 좋은 결과를 낳았다.
언젠가는 ‘라이언 킹’이 야구장으로 돌아오고, 두산 야구도 부활하기를 소망해 본다.
성백유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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