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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피어 더 반가운 제주 벚꽃 연인들 가슴 핑크로 물들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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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13 09:00:00 수정 : 2024-04-13 10: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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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나무’ 꾸미는 신화역사공원 유채꽃밭/노랑 물결 파도치는 예쁜 동화 풍경 선사/애태우던 제주 벚꽃 뒤늦게 만개/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 연분홍 벚꽃·노랑 보라 유채꽃 환상/갯깍 주상절리대 등 볼것 많은 예래생태마을/하예진황등대 오르면 박수기정·산방산·형제섬 파노라마로 

 

예래생태공원 벚꽃과 유채꽃. 최현태 기자

이러려고 그렇게 애를 태웠구나. 연분홍 꽃잎 꽁꽁 감춰 꽃 없는 축제를 만든 얄미운 제주 벚나무. 그래서 더 미안했나 보다. 속상한 이들에게 보답하듯, 예년보다 풍성한 꽃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오래오래 가지에 단단하게 매달려 많은 연인들 가슴을 핑크빛으로 물들인다. 졸졸졸 맑은 물 사시사철 흐르는 제주 서귀포 대왕수천예래생태공원. 개울가에 노랑, 보라 유채꽃 만발하고 무게를 견디지 못한 벚나무 가지들 흐느적거리다 예쁜 꽃잎 물길에 한 장, 두 장 띄워 보내니 봄날의 로맨스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하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봄은 노랑, 유채꽃과 나 홀로 나무

 

하루 종일 흐리던 하늘은 급기야 빗방울까지 떨어뜨린다. 봄꽃 맞으러 제주까지 왔는데 날씨가 돕지 않는구나. 주차장에서 비가 그치기만 기다리는 속상한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오후 들어 거짓말처럼 먹구름 걷혀 파란 하늘 드러내더니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행여 금세 다시 흐려질까 봐 조급한 마음에 차 문 열고 달려가자 눈부시게 노란 유채꽃밭이 방긋 웃으며 반긴다.

 

신화역사공원 유채꽃밭 입구 포토존. 최현태 기자
신화역사공원 유채꽃밭. 최현태 기자

제주에 많은 유채꽃밭이 있지만 제주 서귀포 안덕면 신화역사공원 유채꽃밭은 좀 남다르다. 광활한 노랑 물결이 하얀 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과 맞닿고 그 한가운데서 휘어지며 하늘로 예쁘게 뻗어 나간 한 그루 나무는 동화 같은 수채화다. 제주의 많은 유채꽃밭을 가 봤지만 이토록 서정적인 곳은 처음이다. 연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을 것 같다.

 

신화역사공원 유채꽃밭. 최현태 기자
신화역사공원 유채꽃밭. 최현태 기자
신화역사공원 유채꽃밭 나홀로 나무 포토존. 최현태 기자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다. 봄의 전령사 유채꽃을 시작으로 여름엔 싱그러운 해바라기가 바통을 이어받고 가을엔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가득 채운다. 더구나 꽃밭 면적이 무려 7.5㎢에 달할 정도로 광활해 인파에 치이지 않고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입장료도 없으니 가성비 최고의 꽃밭이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비가 살짝 온 뒤라 공기가 투명해 노란색은 더욱 짙고 선명하다.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분화구처럼 움푹 팬 공간에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예쁜 나무 한 그루 꽃밭을 배경으로 섰고 빨강, 파랑, 하양 의자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사진에 담으라고 손짓한다.

 

예래생태공원 입구 유채꽃밭. 최현태 기자
예래생태공원 입구 유채꽃밭. 최현태 기자

◆마르지 않는 물 따라 만개한 낭만벚꽃

 

제주에서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곳, 서귀포 상예동 대왕수천예래생태공원 입구에도 노랑의 물결이 출렁인다. 제법 규모가 큰 노란 유채꽃밭 뒤로 싱그러운 초록 야자수와 연분홍 벚나무가 들러리를 서 주니 봄의 향연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만개한 벚꽃을 즐길 시간. 주차장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벌써 탄성이 터진다. 노란 유채꽃밭과 울창한 소나무숲 너머로 만개한 벚꽃이 펼쳐지는 풍경이라니. 수줍은 아이의 뺨 같기도 하고 아련한 첫사랑 추억을 닮은 것도 같은 연분홍 꽃잎에 가슴이 설레는 걸 보니 아직 가슴속에 낭만이 살아 있나 보다.

 

벚꽃과 유채꽃이 어우러진 예래생태공원 산책로. 최현태 기자
맑은 물이 흐르는 예래생태공원 실개천. 최현태 기자
예래생태공원 피그닉. 최현태 기자

예래생태공원이 제주 벚꽃 명소로 으뜸인 이유가 있다. 표선면 녹산로 벚꽃길이나 전농로 왕벚꽃거리 등 유명한 벚꽃 명소들은 대부분 차가 다니는 번잡한 도로여서 편안하게 힐링하며 벚꽃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청정자연으로 가득하다. 특히 실개천을 따라 왕벚꽃이 터널을 이뤄 몇시간이라도 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과 호흡하며 봄날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소나무, 벚꽃, 노랑·보라 유채꽃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도 여기서만 볼 수 있다.

 

예래생태공원 벚꽃길. 최현태 기자
예래생태공원 보라색 유채꽃과 벚꽃. 최현태 기자

하얀 원피스를 차려 입은 20대 여성 두 명이 개울로 내려가 서로의 인생사진을 찍으며 연신 깔깔웃음을 터뜨린다. 말을 들어 보니 일본 여행자들이다. 일본도 벚꽃이 유명한데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니 예래생태공원이 ‘벚꽃 맛집’으로 일본까지 소문났나 보다. 코로나19가 물러가고 해외여행이 크게 늘면서 제주를 찾는 내국인들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그 자리를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메우고 있는 듯하다. 청량한 소리를 내며 작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실개천에 발을 담그고 벚꽃놀이를 즐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꽃비와 벚꽃잎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선 햇살 한줌은 연분홍 꽃잎을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 낭만을 더한다.

 

예래생태공원 보라색 유채꽃과 벚꽃. 최현태 기자
예래생태공원 실개천. 최현태 기자

‘대왕수’라는 실개천 이름이 재미있다. 예래동 일대에서 가장 큰 물로 아무리 가물어도 수량이 줄지 않아 이런 별명을 얻었다. 보통 제주의 하천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은 사시사철 물이 흐르니 참 신비스런 곳이다. 덕분에 벚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봄마다 크고 탐스러운 꽃잎을 피우나 보다. 계곡을 따라 끝까지 내려가면 거대한 연못 같은 저류지를 만난다. 백로와 왜가리 10여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다니는 걸 보니 청정자연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 예래생태공원 일대는 한국반딧불이연구회가 2002년 6월 지정한 제1호 반딧불이 보호지역이다.

 

갯깍 주상절리대 현무암 암반지대. 최현태 기자

◆하예진황등대 올라 박수기정 절벽을 마주하다

 

제주 올레길 8코스에서 만나는 예래생태마을은 갯깍 주상절리대, 동굴유적, 조른모살 해수욕장, 논짓물, 개다리폭포, 환해장성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중 갯깍 주상절리대는 예래마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갯’은 바다, ‘깍’은 끄트머리를 뜻하는 제주방언. 바다 끝머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로 무려 1.75㎞에 걸쳐 높이가 다른 사각형, 육각형 돌기둥이 신이 다듬은 듯, 하늘로 뻗어 절벽을 꾸민 기이한 풍경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갯깍 주상절리대 현무암 암반지대. 최현태 기자
용문덕 보라색 유채꽃. 최현태 기자

갯깍 주상절리대는 안타깝게도 낙석 위험 때문에 출입통제라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입구 바닷가에서도 그 신비로운 풍경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갯깍 주상절리대 앞 예래천에서 대왕수천이 바다와 만난 곳까지 드넓게 펼쳐진 현무암 암반지대도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삐쭉삐쭉 솟은 칼바위가 어우러져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듯, 매우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꼬마는 방금 커다란 조개 한 마리 잡았다며 자랑스럽게 내밀고 강태공들은 바다낚시 삼매경에 푹 빠졌다.

 

용문덕. 최현태 기자
하예진황등대. 최현태 기자
하예진황등대. 최현태 기자

열리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려 논짓물을 지나면 용문덕 전망대가 등장한다. 기묘하게 생긴 현무암이 둥글게 장벽을 만들어 백록담처럼 물을 가둔 풍경이 이색적이다. 다시 서쪽으로 5분을 달리면 하예포구에 닿기 전 절벽에 아름답게 선 하예진황등대가 기다린다. 제주 여행자들이 잘 모르지만 낭만이 가득한 곳이다. 노란 유채꽃 뒤로 하얀 등대가 단아하게 선 풍경은 예쁜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하예진황등대 전망대에서 본 박수기정과 산방산. 최현태 기자
박수기정. 최현태 기자

등대에 담긴 얼굴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김진황. 사계리 여자를 만나 결혼한 뒤 자수성가한 그는 고향을 위해 등대를 세운 것으로 전해지며, 1993년 8월1일 최초 점등해 밤바다를 밝히고 있다. 그가 사계리에 세운 빨간 등대는 아내 등대, 하예진황등대는 남편 등대로 불린다. 전망대에 오르면 서쪽으로 거대한 절벽 박수기정 뒤로 산방산이 불룩 솟아 있고 그 왼쪽으로는 신비하게 떠 있는 형제섬과 송악산이 어우러진다. 북쪽으론 유채꽃밭과 벚나무숲 너머로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한라산이 앉았다.

 

바다마르마레. 최현태 기자
바다마르마레 문어 샐러드. 최현태 기자
바다마르마레 가자미 구이. 최현태 기자

꽃놀이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보니 배가 출출하다. 형제섬과 송악산이 한눈에 보이는 형제해안도로 바닷가에 아담하게 자리한 지중해 음식 전문점 바다마르마레로 향한다.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숨은 맛집을 누구나 한 곳쯤은 품고 있다. 제주를 갈 때마다 빼놓지 않는 바다마르마레는 그런 곳이다. 임회선 셰프가 건강한 제주 제철 식재료로 마법을 부려 마치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의 레스토랑에 온 듯 미각을 홀린다. 상큼한 문어샐러드는 잃어버린 미각세포를 일깨우고 허브를 얹은 가자미 구이 한점 떼어 입에 넣으니 제주 바다가 통째로 밀려든다. 

 

바다마르마레 먹고사리 엔초비 파스타. 최현태 기자
바다마르마레 먹고사리 소시지. 최현태 기자
바다마르마레 새우요리와 샴페인 페어링. 최현태 기자

오늘의 특식은 먹고사리 엔초비 파스타. 새벽에 나가 덤불에 팔뚝을 긁히며 열심히 직접 채취한 먹고사리로 만들었단다. 4월 초순은 제주 고사리가 가장 맛있을 때. 봄비를 듬뿍 맞고 한라산 계곡과 곶자왈에서 쑥쑥 자라는데, 먹고사리는 백고사리보다 훨씬 굵지만 속이 비어 있어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뛰어나다. 특유의 쌉싸름한 향도 품고 있어 집 나간 미각을 되찾기 좋다. 특히 제주 고사리는 비타민A, B2, 칼슘, 철분, 단백질 등 영양가도 풍부하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고사리를 먹기 좋게 삶은 파스타면과 함께 입안으로 밀어넣으니 한라산의 건강한 기운을 미각세포가 잔뜩 흡수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빠르게 실어 나른다. 샴페인 뵈브 올리비에르 까르데 도르 브뤼를 곁들이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서귀포=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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