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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말 번역에만 2년…“北 벗어났지만 도움 못 받으니 자유가 없더라” [인터뷰]

, 이슈팀

입력 : 2024-04-12 06:00:00 수정 : 2024-04-11 21: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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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실상 담은 다큐 제작 참여한 최대원 프로듀서
“긴박한 탈북 과정서 ‘고요 속 외침’ 같이 질문 반복”

“한번은 탈북하는 가족들이 ‘투씨 아이하면’이라고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더라구요. 맥락상 ‘차에서 내리면’ 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긴박한 탈북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빠르게 진행돼야 하는데, 미국인 감독의 질문을 한국어로 물어보고 북한말 대답을 영어로 전달하고 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죠.”

 

실제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가 11일 재개봉한다. 탈북에 성공한 가족 이야기와 아들을 탈북시키려다 실패한 내용이 모두 고스란히 담겼다. 영화는 지난해 1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는 다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의 녹음·사운드를 맡은 최대원 프로듀서는 현지에 파견돼 탈북에 동행한 제작진 중 한명이다. 그는 과거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북한 관련 다큐에 참여했다. 영어 통역이 가능하다는 점과 북한 콘텐츠를 만들어 본 경험을 살려 매들린 개빈 감독과 함께 일하게 됐다. 영화 속에서도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 등에서 헝클어진 머리로 등장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북한은 탈북을 막기 위해 매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영화에는 목숨을 건 탈출 과정과 ‘유토피아’라고 믿어 왔던 북한에서 탈출하는 노씨 가족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와 만나 영화에 담지 못한 탈북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최 프로듀서와 일문일답.

 

최대원 프로듀서가 지난 2월2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촬영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북한을 이탈하려는 사람들 중 영화 출연 대상은 어떻게 선정됐는지

 

“북한에 가족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경우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냈을 때 분명히 위해가 있기 때문. 마침 김성은 목사님이 그 많은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 이소연씨 아들 구출을 진행 중이셔서 촬영 시작이 쉬웠다. 이씨 같은 경우는 이미 한국 방송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저희도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특성상 예산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1명만 함께하려고 했다. 그런데 잘 안풀리면서 비상상황이 발생했고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노씨 가족과 함께하게 됐다. 노씨 가족은 이미 가족 몇 분이 한국에 와 계셨다. 그것 때문에 추방 명령 떨어져서 무작정 탈출해 북한에 미련이 없고 남아있는게 별로 없는 분들이었다.”

 

—영화에서는 북한말이 번역되지만 사실 북한말이 이해하기 힘들다. 실제 촬영 때는 의사소통이 어려웠을 것 같다

 

“통역이 쉽지만은 않았다. 마치 옛날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의 ‘고요 속의 외침’ 같았다. 김성은 목사님께서는 북한말을 거의 이해하시지만 저는 북한말을 20%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어서 미국인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통역할 때 똑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해야 했다. 또 노씨 가족 할머니께서 귀가 어두웠다. 저희가 질문을 하면 어머니가 듣고 할머니에게 전달을 해주는데 내용이 사람을 넘어갈 때마다 바뀐 건지 맥락이 완전 다른 대답이 나온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다만 2년에 걸쳐 북한 말을 통역한 덕분에 언어 때문에 영화에 중요한 내용은 잘 담을 수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는 촬영을 거의 못하고 전문 번역가들을 통해 촬영한 영상을 영어로 번역에 집중했다. 이소현 대표에게 직접 물어보는 등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감수를 많이 받았다. 또 미국에서 북한말을 많이 번역해 본 사람들과 연락하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탈북 관련 일을 하시던 분과 영화 번역 작업을 했다.”

 

—노씨 가족 근황은

 

“아버지는 두부 공장에 일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사회복지사 공부하고 계신다. 항상 하소연하시는 게 학원비 때문에 힘들다고 하신다. 한국에서는 수학, 영어 등 학원에서 따로 배우는 것도 많은데 아이들이 연예인이 꿈이라 연기, 노래도 배우고 싶어하니까. 그리고 아이들이 처음에 정말 힘들어했다. 그동안 배웠던 역사도 완전 다르고 영어도 한 적이 없어서 공부에 흥미를 붙이기 어려워한다고 하더라. (웃으며) 탈출할 때는 저에게 ‘공부도 잘하겠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공부 재미없다’ 이러더라고요.”

 

—탈북 관련 영상에서는 항상 ‘브로커’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혼동이 될 수 있는데, 일부는 김성은 목사님 지인들이 도와주셨고 일부는 베트남 등의 조직폭력배들이다. 조직폭력배들과 거래를 하는 이유는 탈북을 합법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약 밀거래 혹은 밀수꾼들 루트를 통해 탈북한다. 그러다 보니 점조직과 유사하게 지역마다 관할하는 사람이 다르고 이 조직에서 토스돼 다른 조직 안내를 받기도 해서 복잡하다.”

 

—브로커들과 마찰도 있었을텐데

 

“브로커니까 그 사람은 돈이 목적이고 큰 뜻이 있어서 하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촬영팀이 함께 이동하니 그들이 흥정을 시작했다. 베트남에 도착한 뒤 산을 넘을 때 거기부터는 동행했던 브로커가 따라오지 않았다. 다른 브로커가 갑자기 8000달러를 더 내야 길을 제대로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성은 목사님께서 다음에 넘어올 사람들을 위해 선례를 안 남기려고 선을 긋고 돈을 주지 않았더니 우리를 엄청 고생시켰다. 브로커가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비탈길로 우릴 데려가면서 김 목사님을 비롯해 몇 번 넘어지셔서 다치고 식량, 물도 잃어버렸다. 처음엔 6시간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결국 넘어가는 데만 13시간이 걸렸다.”

 

—영화에서 ‘추방’이라는 형벌이 등장한다. 탈북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는데 정확히 어떤 형벌인지

 

“추방 명령은 한국으로 치면 무인도에 버려두는 형벌이다. 짐 보따리 툭 치듯. 북한 내의 그런 허허벌판에. 그냥 죽는다고 보고 아무것도 없어서 애들 교육도 못 시키고 그러니까 탈북을 결심하고 무작정 도망친다고 한다.”

 

—영화에서 중국을 거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웃으며) 노씨 가족분들이 중국을 거치며 아마 많이 놀라신 것 같다. 원래 혁창 삼촌이 저희가 촬영한 분량이 있었다. 이전에 이소현 씨 아들 탈출이 무산되면서 저희 브로커 라인이 무너진 상태라 촬영할 사람이 없어 노씨 가족(혁창 삼촌과 딸 청미)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원래 가족분들 삼촌이 공항으로 가서 보내는 장면 나오는데, 이분들이 너무 무서워서 영상이 담긴 휴대전화 SD카드 등을 공항에 버리고 오셨다. 아마 혹시라도 공안에 잡힐까 봐 트라우마가 있었나보다. 그때 프로덕션에서 난리가 났었다. 중국 영상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그나마 초반에 미리 받았던 것과 휴대전화에 조금 남아 있었던 거 끌어모아서 만들었다.”

 

—영화 제목이 ‘비욘드 유토피아’다. 북한에서는 해외는 더 가난한 세상이고 북한이 유토피아라고 선전한다고 알려졌다. 북한이탈주민들은 그러한 선전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나왔는데, 이들과 동행하며 ‘자유’의 의미에 대해 느낀 것이 있는지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을 벗어나니 신분상 자연상태가 됐다. 국가를 벗어난 상태인데 오히려 아무 도움을 못 받게 되니 자유가 없더라. 한국에 있는 것이 자유라면 그 조건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하나의 선전만 있는 것보다 선전의 종류가 두 가지 세 가지 열 가지가 돼서 선택할 수 있는 상태랑은 완전히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은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이익과 정확히 연결되는 지점은 아니더라도 중요하다고 본다. 영화를 찍으며 느낀 것이 자유는 국가권력이 잘 통제됐다는 전제 아래 사회의 구성원 간의 가치가 반영된 룰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대로 선택할 상태나 권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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