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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는 됐고…" 언급 않는 미·일 정상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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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10 22:01:07 수정 : 2024-04-12 11: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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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에 ‘니도토나이요니’(二度とないように)라는 관용 어구가 있다. 한국어로 ‘두 번 다시 없도록’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통상 ‘결코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never to happen again)로 번역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계 주민들이 겪은 고초와 같은 일이 또 벌어져선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인들은 ‘니도토나이요니’를 발음 그대로 ‘Nidoto Nai Yoni’라고 적기도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해마다 2월19일이면 2차대전 때 불이익을 당한 일본계 미국인들을 추모하고 미국의 과오를 반성하며 ‘Nidoto Nai Yoni’를 외친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일(현지시간) 2차대전 당시 미군 소속으로 활약한 일본계 장병들을 기리는 추모비에 헌화한 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2차대전 초반 전쟁과 거리를 두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가 1941년 12월7일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던 군국주의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며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복수’를 다짐하면서 일본과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듬해인 1942년 2월19일 루스벨트는 미국 내 일본계 주민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캘리포니아주(州) 등 태평양에 면한 서해안 지역에 살던 일본계 미국인들이 조국을 배신하고 일본 편에 설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무려 12만명에 달하는 일본계 주민들이 강제수용소에 감금됐다.

 

오늘날 이 사건은 미국의 ‘흑역사’로 꼽힌다. 아무런 물증도 없는데 단지 혐오감에 사로잡혀 인종차별과 소수민족 탄압을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훗날 지미 카터 행정부는 2차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 진상을 조사했다. 뒤를 이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이를 토대로 일본 정부에 사과하는 한편 생존해 있던 일본계 미국인 피해자들한테 금전적 배상을 했다. 그러면서 매년 2월19일을 ‘일본계 미국인 감금(Incarceration) 기억의 날’로 지정해 피해자들을 추모하도록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2월19일 성명에서 2차대전 때의 일본계 주민 감금을 “우리나라(미국)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가 9일(현지시간) 백악관 앞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시다 유코 여사, 기시다 총리, 바이든 대통령, 질 바이든 여사. AFP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9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에서 2차대전 당시 미군 소속으로 복무한 일본계 장병들을 위한 추모비에 헌화했다. 언제부턴가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을 가급적 거론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뚜렷하다. 백악관의 경우 매년 12월7일 진주만 공습 희생자들을 기리면서도 공격 주체인 일본(Japan)이란 나라 이름은 쏙 뺀다. 미·중이 충돌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한 일본에 대한 배려로 풀이된다. ‘적의 적은 친구’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같은 국제정치학의 금언(金言)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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