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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모두에겐 모두의 자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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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9 23:30:09 수정 : 2024-04-09 23: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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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세 개의 책상이 있다. 높이도 색상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오로지 책을 위한 용도라는 공통점이 있는 그야말로 ‘책상’이다. 첫 번째 책상은 검은 철골 프레임이 아까시나무로 된 상판을 받치고 있다. 책상과 길게 연결된 책장들이 그려내는 간결하고 명료한 선이 좋아 가구점에서 그걸 본 뒤 나는 오래 고민했다. 인세를 털어 구매한 뒤 십 년 가까이 쓰고 있으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첫 번째 책상에 앉을 때는 깊고 그윽한 문장들을 읽고 싶을 때다. 나는 그곳에 앉아 수많은 문장을 곱씹고 덧그렸다.

두 번째 책상은 모서리가 둥글고 상판이 흰 책상으로 주로 소파에 앉아 사용한다. 내게 있는 책상 중 가장 작은 것이지만 60×120이니 웬만한 것은 늘어놓을 수 있다. 가볍고 옮기기 쉬워 창가에 둘 때는 캔들 워머를, 거실에 둘 때는 아이패드를 귀퉁이에 올려 둔다. 속도감 있고 경쾌한 문장들을 읽을 때, 가볍게 메모를 하거나 짧은 글을 쓸 때 주로 여기 앉는다.

세 번째 책상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크고 무겁다. 좌식 책상이라 아무 곳에나 앉아 어느 곳이든 쓸 수 있는데, 차나 커피를 올려 두는 실리콘 매트가 늘 오른쪽에 깔려 있다. 노트북과 책, 온갖 파일과 문구류가 쏟아져 있는 책상에서 나는 내가 해야 하는 대부분의 일을 한다. 커다랗고 묵직한, 어지간해서는 뒤로 밀리지 않는 안정적인 책상을 보고 있자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것이 지금껏 내가 갈망해 온 ‘내 자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마치 유랑하듯 타인의 책상 위를 떠돌았다. 어느 곳에서든 나는 타인의 책상을 빌려 써야 했다. 도서관 열람실 책상일 때도, 프랜차이즈 카페 테이블일 때도, 문학관 책상일 때도 있었다. 어떤 책상은 너무 낮아 목을 길게 늘어뜨려야 했고 어떤 책상은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아 앉기 전에도 앉은 후에도 눈치를 봐야 했다. 어떤 책상은 너무 소란한 곳에 놓여 있었고 어떤 책상은 내 형편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들었다. 노트북과 충전기, 잡다한 자료가 든 가방을 걸머메고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돈도 시간도 없는 날에는 쇼핑몰이나 지하철역 간이 테이블에 몸을 밀어 넣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전부 스쳐 갈 뿐이라는 데서 기이한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 저 사람들에게는 저들만의 자리가 있나. 내게도 나만의 자리가 필요해. 그런 말들을 웅얼거리며 이십 대를, 삼십 대를 보냈다.

사십 대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책상에 집착한다. 작은 집 이곳저곳 책상을 두고 인장 찍듯 물건을 부려놓는다. 이곳만큼은 내가 옮겨 가지도 쫓겨나지도 않아도 될 나만의 자리라고 증명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러는 게 어디 나뿐일까. 무거운 가방을 메고 유리창 너머를 기웃대는 이들이, 낡은 어깨와 무거운 손을 내려 둘 자리를 찾는 이들이 어디에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책상 모서리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만다. 간절한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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