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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100세 시대… 노년층도 “70세 넘어야 노인” [창간33 - 노인기준 다시 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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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02 12:15:00 수정 : 2022-02-02 16: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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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젊은 노인’ 300만명 육박
65세 이상 노인… 130년 전 獨 기준
기대수명 83.5세, 중위연령 43.7세
60대 5명 중 2명 이상은 계속 일해

고령화 가속… 노인연령 상향 불가피
생산연령인구 기준 69세 확대 검토
노년부양비 급증 10년 늦출 수 있어
“연금·정년연장 대타협… 함께 가야”

“이 글은 내가 62세부터 65세까지 겪은 취업 분투기다.”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된 이순자씨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1953년생인 이씨는 한때 어린이집을 운영한 것을 제외하면 평생을 전업주부로 지냈다. 그러나 황혼이혼을 한 후 생계를 위해 세탁공장, 백화점, 사무실, 어린이집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구한다. 자격증을 딴 뒤 요양보호사로, 또 장애인 활동 보조인으로도 일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겪는 노동”은 68세에 비로소 끝난다. 이씨가 취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경험을 담은 이 작품은 지난해 7월 ‘매일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씨 사례는 우리나라 60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60대는 더 이상 은퇴 후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즐기는 나이가 아니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60세 이상 취업자는 524만4000명에 달한다. 60세 이상 전체 인구(1288만2000명)의 40%에 달한다. 5명 중 2명 이상은 60대에도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65세 이상으로 집계를 좁혀도 278만6000명이다.

◆기대수명 83세인데 65세부터 노인?… 130년 전 獨 기준

‘젊은 노인’의 시대가 도래했다. 노인 기준이 되는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급증한 시대 상황,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고령화 속도에 맞춰 주요 정책 대상으로 떠오른 노년층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노인 연령에 대한 법적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65세 이상’이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통용된다. 65세부터는 정부로부터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생산연령인구 역시 15∼64세다.

노년층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65세가 자리 잡은 것은 130여 년 전이다.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끌던 독일 제국이 1889년 세계 최초로 노령연금을 도입할 때 65세라는 기준을 채택하면서부터다.

윤민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논문 ‘노인복지 관점에서의 노인 연령 기준’을 통해 “노인을 65세 이상인 자로 한다는 기준은 독일 비스마르크 때 도입된 연금제도에서 시발점이 돼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며 “누구도 왜 65세부터 노인이라고 불려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60대 자신도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1만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노년이 시작되는 연령’을 평균 70.5세라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65∼69세 인구는 301만명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노년층에 해당되지만,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인구가 300만명이 넘는 셈이다.

전체 인구를 나이 순서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을 뜻하는 중위연령만 봐도 그렇다. 한국의 중위연령은 1976년에 20세에서 1997년에 30세, 2014년에 40세에 도달했고 2020년에는 43.7세에 이르렀다. 기대수명 역시 1970년 62.3년에서 2020년 83.5세로 30% 이상 크게 늘어났다.

◆생산인구 늘리면 부양 부담 완화… “새 정부 과제”

문재인 정부는 생산연령인구 기준을 현행 15∼64세에서 15∼69세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라면 생산연령인구가 2040년에는 3000만명 밑으로 떨어진다. 2060년에는 2066만명으로 전체 인구 50%를 밑돌게 된다.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공개된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생산연령인구를 69세로 늘렸을 때를 가정한 데이터가 처음으로 포함됐다. 생산연령인구를 64세까지로 잡았을 때 노년부양비(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고령 인구의 비율)는 2020년 21.8에서 2036년 51.1, 2070년에는 100.6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생산연령인구를 69세까지 늘릴 경우 노년부양비는 2020년 13.7에서 2030년 23.9로 증가세가 완화된다. 노년부양비가 50을 넘는 시점은 2050년으로 추산된다. 생산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점을 10년 이상 늦출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연금수급, 정년연장, 국민연금 개혁 등과도 맞물린 복잡한 이슈라는 점에서 간단하지 않다. 생산연령인구 상한을 높이면 자연스레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은 물론 세대 간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감안하면 ‘복지 사각지대’를 무시하기도 어렵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남정탁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생산연령인구를 확대하고,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것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한 거의 유일한 대응 전략”이라며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반드시 진지하게 논의돼야 하는 담론”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생산연령인구를 확대하면 당장 제도적으로 정년을 65세로 연장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현재의 연공서열제에 성과급제 성격을 강화하는 등 임금체계 개편까지 필요하다”며 “서로 양보와 대타협을 해야한다.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임승차 등 경로우대 기준도 상향 불가피 “노인빈곤 악화 우려… 나이보단 맞춤 지원을”

 

노인 연령을 70세로 올리면 각종 복지제도의 대상이 되는 노인 연령 기준도 조정이 불가피하다. 고령인구 증가에 따라 나날이 불어나는 복지재정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나이보다는 개별 여건과 필요에 따른 맞춤형 지원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2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가동된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는 경로우대 기준 연령을 70세 안팎으로 높이는 등 여러 방안을 논의 중이다. 경로우대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임승차와 박물관·고궁 무료입장 등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책마다 노인 연령 기준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복지제도의 상당수는 65세를 기준으로 한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장기요양보험 등도 65세 이상의 노인이 대상자다.

 

노인의 비중은 커지는데 복지 수혜 대상 연령 기준은 그대로여서 재정 안정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55년 수령 자격이 되는 19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62세부터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5년마다 1세씩 상향돼 2033년에는 65세가 된다. G5 국가(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현행 65∼67세→67∼75세 상향 예정)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촘촘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복지재정 부담으로 노인 연령 기준을 조정하는 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라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을 보이는데 (대안 없이) 사회보장제도의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정년연장 등 (노인들이) 더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같이 만들어진다면 국가의 책임 비중이 큰 정책의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걸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일정한 기준은 필요하지만 수혜 대상을 일괄적으로 정하기보다는 개별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책의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을 위해 최소 자격 조건으로서 노인 연령을 규정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필요에 맞게 대상자가 선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와 성별, 배우자 유무, 교육 수준, 거주지역 등에 따라 노인들의 처지는 천차만별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개인소득 부분에서 65∼69세 노인(2132만원)은 80∼84세 노인(949만원)보다 공적 이전 소득을 포함한 연 총소득이 두 배 넘게 많았다. 남자(2072만원)가 여자(1169만원)보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1662만원)가 없을 때(1345만원)보다 소득이 높았다.

 

석 교수는 “수혜 대상 기준을 다양화해 개인의 사정에 맞는 복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초고령사회 일본은 전기노인(65∼74세)과 후기노인(75세 이상)으로 구분해 복지제도를 달리 적용한다. 독일의 장기요양보험 제도는 나이 제한 없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자립성 등을 판단해 대상자를 정한다. 급여방식도 시설급여와 현금급여 등 선택할 수 있게 해 자율성을 높였다.


백준무·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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