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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국부 지키기, 노르웨이와 한국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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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27 23:05:51 수정 : 2024-05-28 10: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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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스 판매 수입 국부펀드 운용
기름값도 비산유국보다 훨씬 비싸
25만원 지원 압박, 재정준칙 무관심
미래 세대에게 죄짓는 정치 멈춰야

‘신선이 사는 곳’,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미당 서정주 시인은 생전에 노르웨이 피오르의 풍광을 보고 격한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7자매 폭포 등 경치가 빼어나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예이랑에르 피오르. 가장 길고(204㎞), 가장 깊은(1308m) 송네 피오르. 험준한 절벽은 적지만 목가적 분위기가 일품인 하르당에르 피오르.

김환기 논설실장

끝없이 펼쳐지는 피오르와 폭포, 절벽, 설산 그리고 빙하와 호수들. 휴가 기간에 크루즈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만난 노르웨이의 절경들은 탄성을 연발하게 했다. 노르웨이를 와보면 왜 ‘빙하가 빚은 걸작’이라고 하는지 알게 된다. 서정주의 극찬이야말로 피오르를 짧지만 가장 정확히 그려낸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르웨이에서 자연환경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게 있다. 기름값과 국부펀드(NGPFG)이다. 1969년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된 노르웨이는 전 세계 석유 수출액 7위, 천연가스 수출액 3위인 자원 부국이다. 그런데도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리터당 3000원에 팔고 있었다. 비산유국인 이웃 국가 스웨덴(2200원)보다 훨씬 비쌌다. 같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800원)와 천양지차다. 인구가 551만명에 불과해 복지 차원에서 저가에 공급할 만한데도 노르웨이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에너지 포퓰리즘과 ‘자원의 저주’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읽을 수 있다. 자원의 저주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부족한 국가보다 오히려 경제발전이 부진하고 국민 삶의 질이 낮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을 말한다.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일머니를 다른 산업 육성에 쓰는 대신 무상 연료·교육·의료·주택 제공에 쏟아붓다가 국가 경제가 파탄 나지 않았는가.

노르웨이는 국부펀드를 통해 자원의 저주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1990년에 설립된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석유와 가스가 고갈될 때에 대비해 판매 수익의 상당액을 적립해 불린다. 자산이 3월 말 기준 17조7000억크로네(2212조1460억원). 국부펀드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전 국민에게 나눠줘도 1인당 4억원이 넘는 액수다. 한국인 입장에선 부러울 따름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70여개국 9200여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 해외 주식·채권·부동산에 분산 투자한다. 한데 수익률이 대박이다. 올해 1분기에만 기술주의 급등으로 6.8%의 수익률을 기록해 1조2100억크로네(약 151조2379억원)를 벌었다. 우리나라 올해 예산(656조6000억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렇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매년 국부펀드 기금의 최대 3% 정도를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수익 내 인출이 원칙이라 석유와 가스를 팔수록 국부펀드의 원금은 불어날 수밖에 없다. 가장 이상적인 국부펀드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렇다면 석유가 고갈될 경우 노르웨이 경제는 어떻게 될까. 국부펀드 수익에다 경쟁력이 강한 수산물·목재 가공업, 금속 제련업, 풍부한 전력, 안정적인 정치 시스템 때문에 선진국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훗날 노르웨이 미래 세대는 선조들의 배려와 탁월한 선택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까. 노르웨이는 1397년부터 1814년까지 덴마크의 지배를, 1814년부터 1905년까지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2023년 1인당 GDP가 9만9266달러로 세계 4위, 북유럽 제1의 부국으로 우뚝 섰다. 과거엔 일자리를 찾아 스웨덴으로 갔지만 이젠 처지가 역전됐다.

미래 세대를 위해 부를 키우고 지키는 노르웨이의 노력은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정치권에 포퓰리즘의 망령이 활개 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거대 야당은 국가 예산 13조원이 드는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압박하고 있다.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데도 직진 일변도다. 국가부채가 지난해 1100조원을 넘어섰지만, 정치권은 관리재정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 법제화에 관심이 없다. 표를 노린 포퓰리즘 정치의 걸림돌로 여겨서 그러는 건가.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이기적인 약탈 정치는 이제 멈춰야 한다.


김환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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