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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청바람 맞으며 힐링하는 태기산 늦가을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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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21 01:00:00 수정 : 2020-11-20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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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세월 단아한 기품 강원도 최초 풍수원 성당 늦가을 정취 물씬/메밀 막국수 먹고 후식은 안흥찐빵/관동 옛길 루지 타고 달리고 태기산 정상 오르면 하안 풍력발전기 위로 쏟아지는 장엄한 낙조

태기산 풍력발전기

해발 1261m. 표지석에 적힌 숫자는 드디어 더는 오를 곳이 없음을 알린다. 그리고 파란 하늘 아래 놓인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하얀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선 이국적인 풍경. “윙윙윙윙” 거리며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를 곁들인 힘찬 날갯짓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잘게 부숴 바람결에 모두 날려 보낸다. 사람도, 바람도 쉬어가는 태기산 정상에 섰다.

태기산 정상 노을

#풍수원 성당 산책로에 가을이 깊어가네

 

한우 말고는 뭐 볼 것 있을까 하던 강원도 횡성에 요즘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좋은 청정 자연이 가득해서다. 태기산은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거쳐 겨울로 갈수록 감춰놓은 비경을 드러낸다. 특히 능선의 빈 곳을 채운 몽롱한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일몰의 성지로 요즘 인기다.

풍수원성당
풍수원 성당 예수상

낙조 시간에 맞춰 태기산에 오르기로 하고 늦가을에 가장 예쁘다는 풍수원성당으로 향한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아주 고요하다. 덕분에 ‘언택트’하며 늦가을 정취를 고즈넉하게 즐길 수 있겠다. 성당의 산책로를 따라 늦가을 속으로 깊숙하게 걸어 들어간다. 붉은 벽돌로 지은 운치 있는 성당 건물과 모든 이를 품에 안을 듯 하늘을 향해 포근하게 두 팔을 벌리고 선 하얀 예수 조각상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성당을 신부와 신자들이 직접 지었다니 대단하다.

 

풍수원 성당 뒷면 풍경
풍수원성당 성모마리아상

풍수원성당은 강원도의 첫 번째 성당이자 우리나라 네 번째 성당일 정도로 역사가 아주 깊다. 18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유박해 때 신자 40여명이 경기도 용인을 떠나 피난처를 찾아 나섰고 이들은 8일 동안 헤매다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산속에 정착했다. 이후 가톨릭 박해를 피해 많은 신자가 이곳에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됐고 이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했다. 초가 성당에 모여 80년여 동안 성직자 없이 신앙을 지키던 신자들은 1888년에야 프랑스 성직자 르메르 신부를 맞는다. 지금의 성당을 지은 이는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 한국인 신부로 서품받은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는 1906년 이곳에 부임한 뒤 자신의 돈과 교우들의 헌금을 모아 1년 만에 고딕양식의 성당을 완성했다. 빨간 벽돌로 쌓은 벽과 뾰족한 4층 종탑은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풍수원성당 십자가의 길
풍수원성당 산책로

풍수원성당의 진정한 매력은 성당 왼쪽 언덕의 산책로에 있다. 예수의 고난을 따라 묵상하면서 걷는 ‘십자가의 길’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든 과정이 돌판에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정규하 신부의 묘를 지나 정상에 서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조각상을 만난다. ‘성모칠고’ 오두막을 지나 가마를 굽던 유물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늦가을의 낭만 속에 푹 빠지게 한다. 성당으로 돌아오니 번잡하던 마음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종교를 떠나 사색하면서 만추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장가네 막국수
꿩만두

#메밀 막국수 먹고 관동 옛길 루지 타고 달려볼까

 

늦가을 풍경에 너무 취했나 보다. 깊은 상념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니 점심때가 지났다. 횡성 하면 한우지만 너무 식상해 지인이 알려준 맛집 장가네 막국수를 찾았다. 경기도 용인의 고기리 막국수와 ‘막국수 왕좌’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곳이란다. 당연히 메밀 100%로 면을 뽑는다. 메밀만 반죽해 면을 뽑으면 뚝뚝 끊어져 먹기 힘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면을 뽑는 솜씨들이 워낙 좋아져 순 메밀만 쓰는 맛집이 많아졌다. 고추장 등 갖은 양념에 버무린 명태회가 올려져 나오는데 비비지 말고 면 위에 회를 조금씩 올려 먹으면 메밀의 쌉싸름한 맛과 명태의 깊은 바닷냄새가 입안에 조화롭게 퍼진다. 막국수가 반쯤 비워졌을 무렵 육수를 아주 조금 따라 섞어 먹으면 두 가지 맛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얇은 만두피에 꿩고기와 야채를 알차게 넣은 메밀 꿩만두도 별미다.

안흥찐빵 마을 조형물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후식은 안흥찐빵이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안흥찐빵 마을이 조성돼 있다. 1968년부터 시작해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과 ‘심순녀안흥찐빵’이 원조로 두 집의 주인장은 자매다. 뻔한 간식이라 여길 수 있지만 이곳 찐빵은 좀 다르다. 쫄깃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효모 향이 자꾸 손이 가게 한다. 국내산 팥을 무쇠솥에 삶아서 인공감미료 없이 찐빵 소를 만들고, 막걸리로 발효시킨 밀가루로 빵을 만든 다음 하루 동안 숙성시켜 쪄내는 것이 비결이다. 1998년부터 찐빵집이 하나둘 늘기 시작해 지금은 찐빵 마을이 됐다.

횡성루지 체험

후식을 먹고도 시간이 넉넉해 횡성루지체험장으로 향한다. 국도42호선 관동 옛길은 조선시대 서울∼강릉을 오가던 유일한 길. 교통이 발달하고 터널이 생기면서 이 길은 쓸모없어졌다. 횡성군은 폐쇄된 뒤 오랫동안 방치됐던 관동 옛길 중 전재∼오원리 구간 내리막길 2.4km를 루지체험장으로 꾸며 세계에서 가장 긴 루지 코스가 탄생했다. 별도로 코스를 개발하지 않고 기존 도로와 숲을 그대로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매표소에는 단체로 루지를 즐기러 온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횡성루지는 출발점까지 셔틀버스로 올라간 뒤 시속 30km로 달려 내려오는 짜릿한 무동력 레저스포츠다. ‘육상 썰매’로 불리는 루지는 기어를 앞으로 살짝 밀면 달리고 당기면 속도가 줄어들어 어려운 조작 없이 중력에 몸을 맡긴 채 횡성의 청정 바람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다. 트릭아트와 동화나라 구간을 지나면 본격적인 내리막길이 시작돼 짜릿한 스릴을 만끽하게 된다. S자 코스에서 속력을 내면 전복될 수 있고 무서워서 속도를 줄이는 이용자도 많으니 너무 신나도 과속은 금물이다.

태기산 정상 풍력발전기

 

#태기산에 힐링의 바람이 분다

 

태기산은 횡성군의 최고봉일 정도로 높다. 하지만 정상까지 어떻게 오를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임도를 따라 승용차로 태기산 표지석이 서 있는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서다. 다만 비포장길이 매우 거칠고 곳곳에 깊게 파인 곳이 많아 안전운전이 필요하다. 일행을 태운 차는 심하게 요동치며 30분 넘게 오르막길을 달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할 때쯤 정상에 도착했다.

태기산 정상 풍력발전기

산세는 웅장하고 가파르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20기의 하얀 풍력발전기가 푸른 가을 하늘, 산과 들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쾌하면서도 낭만 가득한 풍경을 선사한다. 연인들은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느라 바쁘다. 산이 높다 보니 구름이 발아래 깔리고 산봉우리는 마치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섬처럼 아름답다.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그는 신라군에게 쫓기다 이곳에 태기산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와 싸웠다고 한다. 태기산 자락인 성골 골짜기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집터, 샘터가 곳곳에 남아 역사를 전한다.

태기산 정상 표지석
태기산 정상 노을

물푸레나무, 주목군락지 등 활엽수로 뒤덮인 원시림과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낙수대 폭포와 어우러진 심산계곡이 절경이라 등산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청정체험길(2.5km), 산철쭉길(3.5km), 태기왕전설길(4.5km), 낙수대계곡길(6.7km) 등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이제 서서히 해가 떨어진다. 산꼭대기에서 보는 낙조는 장엄하다. 마치 수평선 같기도, 지평선 같기도 한 구름 위를 아주 길게 일직선으로 물들이는 황홀한 일몰은 오랫동안 이어진다.

카페 호수길133
카페 호수길133

여유가 있다면 인근 카페 호수길133도 들러보시길. 주인장이 별장으로 쓰던 곳을 개조해 카페로 꾸며 얼마 전 문을 열었는데 정원이 아름다워 가족,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작은 연못가에서 따뜻한 햇볕을 누리며 즐기는 여유로운 소풍이 늦가을의 소중한 추억을 남긴다. 

 

횡성=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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