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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코로나, 추석 풍경 어떻게 바꾸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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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28 23:51:48 수정 : 2020-09-29 00: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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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사회상황 등에 따라 변화
코로나로 비대면 명절맞이해
올핸 성묘·모임 등 자제 분위기
가족의 존재·의미 성찰해 봐야

올해 추석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속담이 간절히 다가온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내년이면 아흔이라시는 동네 이장님 어머님은 “6·25 동란 때도 이웃끼리 마실은 갔는데 요즘 노인들은 코로나 옮을까 봐 집 안에서 꿈쩍도 안 한다”시며 혀를 끌끌 차신다. “올해 추석에는 자식들 얼굴도 못 볼 것 같다”며 눈물을 훔치시는데, 보는 사람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러고 보니 작년 추석엔 동네 전통시장에 자리한 떡집에 송편을 사러 갔었다. 추석 대목을 맞아 떡집 앞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연신 송편을 쪄내는 주인장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불현듯 어린 시절 집에서 (친정)엄마와 함께 송편을 빚던 풍경이 떠오르기도 했다. 엄마는 늘 ‘만두는 소를 먹는 것이니 피(껍질)를 얇게 밀고, 송편은 살을 먹는 것이니 도톰하게 빚어야 한다’시며, 송편 반죽에 정성을 들이셨다. ‘송편 예쁘게 빚으면 시집가서 예쁜 딸 낳는다’는 덕담(?)도 엄마의 단골 메뉴였는데, 엄마 인물만 못한 딸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며 투덜대곤 했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어린 시절의 추석 풍경이 마냥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는 차례상 준비하느라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며느리의 명절 증후군(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을 의미함)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하기야 영어에도 “holiday syndrome(명절 신드롬)”이란 표현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서구인들에게도 명절이란 가족이 함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보니, 이때가 되면 주위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고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가족을 갖지 못한 채 외롭고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과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증가하는 현상을 일컬어 명절 신드롬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네에게 명절 증후군이 부계 혈연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가족 및 친족을 향한 무거운 책임과 의무로 인해 파생되는 현상이라면, 서구의 명절 신드롬은 이상적 가족에 대한 로망과 현실적 가족 사이의 괴리로 인한 불만과 좌절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한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도 명절 증후군은 서서히 약화되어 간 듯하다. 이제는 차례 음식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하고 여행지에서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는 소식이 등장하더니, 명절 연휴 기간이면 해외여행객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국제공항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자녀들 고생시키지 않으려 역귀성하는 부모님들 이야기나, ‘언제 결혼할 거냐, 취직은 안 하냐’ 등등 부모와 친척의 압박을 피해 나 홀로 명절을 보내는 자녀들 이야기도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요즘은 ‘추석에는 친정 먼저 가고 설(구정)에는 시댁 먼저 간다’는 집들도 서서히 늘고 있고, 핵가족끼리만 명절 연휴를 즐긴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신세대 며느리도 만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추석 풍경 또한 사회 변화의 흐름이나 개별 가족의 상황에 맞추어 끊임없이 움직여온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고자 방역당국에서 성묘나 가족 모임 등을 자제해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으니 올해 추석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풍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와중에 가족이란 진정 무엇일까, 더불어 추석 명절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를 두고 깊은 성찰과 다양한 사색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 대목에서 일본 가족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가 주장해온바,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생활자’로서의 가족과 ‘언제 어디서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가족으로 의미와 기능을 나누어 생각해보자는 주장은 나름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생활자가 곧 가족이라면 굳이 혈연관계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특히 현재와 같은 위기상황이라면, 혈연을 넘어 이웃사촌,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 취향 공동체, 가상의 친족(fictive kin)을 넓은 의미의 가족으로 포함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들과 함께 가족의 고유 기능이라 할 정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가족적 네트워크를 확대해간다면 위기 상황을 극복해가는 데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언제 어디서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가족 특유의 의미도 결코 약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까이 있는 하우스 메이트보다는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족의 존재가 더욱 소중함은 물론이다. 코로나19가 가족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에 거의 이견이 없는 상황에서, 올해 추석 명절을 보내는 동안 앞으로 우리 가족이 원하는 명절 의례는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활발하고도 생산적인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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