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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진정성’에 목마른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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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17 22:19:24 수정 : 2020-08-17 22: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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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수해현장 깨끗한 옷, 대중들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줘
진정성, 상대가 인정할 때 존재… 일회성 이벤트로는 얻지 못해

최근 미디어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사건들을 일별해보니 공통의 화두가 눈에 뜨인다.

수해 복구 현장에서 찍힌 국회의원의 진흙 한 점 없는 사진 논란, 구독률 최상위를 기록 중인 유명 유투버들의 뒷광고를 둘러싼 폭로전, 유재석까지 속였다는 일명 ‘테슬라 주주’ 유투버 부부의 거품 성공 스토리 등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진정성’을 향한 목마름 아니겠는지.

위 사건의 주인공들은 대중과 소통하는 일에 높은 가치를 두는 직업인임이 분명한 만큼, 각자 행동의 진정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간 쌓아온 신뢰와 인기에도 크고 작은 상처를 받게 된 것 같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이 대목에서 진정성의 의미와 가치를 곰곰 생각케 했던 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실화(實話)의 주인공은 유명 소설가와 그의 고등학생 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밤낮없이 소설쓰기에 매달리던 작가는 그날도 예외 없이 밤샘작업을 하다 문득 ‘나는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글을 쓰는 것일까?’ 회의가 들더란다. ‘그렇지, 가족을 위해서지’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더란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들 녀석을 보자마자 “아들아 넌 아버지에게 관심이 있냐?” 물었단다. 아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의 고민도 없이 “아니”하고는 나갔다는 것이다. 순간 맥이 풀리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소설가는 일단 하던 작업을 마친 후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행여 싫다고 거절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던 아버지 마음을 헤아렸는지 아들은 의외로 순순히 “그러지 뭐” 하더란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하는 아들이 혹여 마음을 바꿀까봐 “조건? 무조건 들어줄게.” 호기롭게 답을 했단다. 아들이 제시한 조건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될래?” 장래 희망 묻지 말고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공부 이야기 안 한다고 약속하면 기꺼이 여행을 가겠다고 했단다.

그러고 아버지와 아들은 길을 떠났는데 ‘정말 아들과 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소설가의 고백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함께 설악산 정상을 올랐고 돌아오는 길에는 강릉 밤바다에 들렀단다. 마침 휘영청 떠오른 달 아래 파도 소리마저 마음을 홀리는 탓에 모래사장 위에서 아들 녀석과 미친듯 뛰어놀다 왔노라 했다. 며칠 후, 밤을 지새우며 글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귤 한 접시를 밀어 넣길래 흘끗 보니 아들 녀석의 뒷모습이었고, 아침 식탁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빠 요즘 글은 좀 써지시나요?” 묻기도 한다 했다. 이후 아버지와 아들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는 스토리였다. 이 해피엔딩 이야기 속 주제는 한 번도 직접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들과 소통하고픈 아버지의 진정성 이었다는 생각이다.

진정성은 상대방이 인정해줄 때만이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나 스스로 진정성이 있노라고 아무리 외친들 상대방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통을 이야기할 때면 대부분은 ‘어떻게’에 주목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소소한 방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소통할 것인가임을 기억할 일이다. 콘텐츠에 담긴 진정성은 상대에게 어떤 형태로든 전달되지만, 립서비스 수준의 진정성은 대개는 진의를 의심받게 마련이다.

더불어 진정성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특징 또한 갖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유지되는 한결같음이야말로 진정성의 토대이자 신뢰의 바탕이 됨은 물론이다. 일회성 이벤트는 순간적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으나 진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재치 있는 이미지 메이킹 또한 순식간에 인기로 연결될 수는 있겠으나 이 또한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높다.

수전 케인의 대표작 ‘콰이어트’에는 현대사회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진정성을 실현하고 진정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음을 간파한 대목이 등장한다. 산업화 도시화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는 마을 공동체 안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관계를 지속해가는 동안 서로의 캐릭터(character)를 충분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었던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낯선 이들과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만큼 캐릭터보다는 퍼포먼스(performance)에 주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랜 시간이 걸려야 드러나는 진국 같은 캐릭터보다는 짧은 시간에 강력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수행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온라인 세계야말로 현란한 퍼포먼스나 현혹적 이미지 메이킹의 공간으로 기능하리라는 예측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온라인 세계야말로 진짜만이 살아남는 공간이자 진정성의 가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임이 확인되고 있으니, 진정성을 향한 목마름은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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