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수천 년을 산 암각화가 50여 년 만에 존립 위기 맞은 사연은? [강구열의 문화재썰전]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강구열의 문화재 썰전

입력 : 2019-07-28 13:00:00 수정 : 2019-07-28 11:32:4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반구대암각화 (3)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가 열리고 있습니다. 에트루리아라는 고대국가와 관련된 유물 약 300점을 모은 전시회입니다. 이 나라가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에 성립했던 시기는 서기전 900∼100년 즈음. 약 3000년 전의 국가죠.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고 하면 에트루리아의 시간이 얼마나 오랜 전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에트루리아의 유물들은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디고 지금껏 전해질 수 있었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돌,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돌의 경우 특별한 충격이 없는 한 영원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재질입니다. 석재, 혹은 금속재인 전시품 대부분이 무덤에 묻혔던 부장품이라 외부와의 접촉이 최소화되었다는 것도 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었겠죠. 우리나라의 유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사, 고대의 유물들은 거의 전부가 석재 혹은 금속재입니다.  

 

멀리는 구석기 시대의 산물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는 반구대 암각화는 대표적인 사례겠죠. 호랑이, 사슴 등 육지동물과 무당, 사냥꾼, 어부 등 선사인, 무엇보다 고래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놀라운 그림이 암면에 새겨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금껏 남아 있겠습니까.

 

그런데 반구대 암각화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감은 10여 년전부터 제기됐습니다. 치명적 상처를 입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습니다. 인간의 시간에 비하면 영원이라고 해도 좋을 세월을 살아온 반구대 암각화가 불과 반세기 정도만에 생명까지 위태로워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반구대 암각화 앞을 대곡천이 흐르고 있다. 하류에 있는 사연댐에서 물을 가두면 대곡천 상류의 수위가 올라가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긴다. 

◆사연댐 건설로 시작된 ‘물고문’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기 전인 1965년 울산 울주군 대곡천에 큰 공사가 있었습니다. 울산에 물을 대기 위한 사연댐 건설공사였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에서 상류로 4.6㎞ 떨어져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연댐의 건설로 인해 반구대 암각화의 운명을 제대로 꼬이기 시작합니다. 훼손의 주범인 침수가 시작되었거든요. 사연댐에서 물을 가두니 상류의 수위가 올라갔고, 반구대 암각화가 잠기는 겁니다.    

 

사연댐이 만수위에 이르면 반구대암각화는 완전히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연댐의 방류와 강수량 등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연댐 건설 이후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8개월가량 물속에 잠깁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암면은 방해석인데, 약한 산성을 띄는 물과 쉽게 반응해 용해되는 성질을 가졌다고 합니다. 용해된 암면은 갈라지게 되겠죠. 암면에 발달한 절리(節理·암석의 균열)에 스며든 물 때문에 암면이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물에 잠겼을 때 반구대암각화 표면에서 자라는 식물류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물이 빠진 후 식물들이 말라 죽으면서 덩어리째 떨어져 나가 암면이 부스러집니다. 암면의 틈으로 끼어든 뿌리가 균열을 일으키거나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침수상태에서 물 속을 흐르는 각종 물질이 암면에 주는 충격도 빼놓을 수 없죠. 크고 작은 돌들, 나무 조각 등 단단한 물질이 암면을 치면서 생기는 충격이 상당합니다. 급류에서라면 충격이 더하리라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침수와는 관계가 없지만, 한 때는 인위적인 훼손도 여러 차례 지적됐습니다. 반구대암각화의 주형을 뜬답시고 발랐던 합성수지류가 찌꺼기로 남아 훼손의 원인이 됐고, 탁본 과정에서 암면이 깎여 나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써놓는, 문화재 훼손의 단골들은 반구대 암각화도 더럽혔습니다.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있다. 

◆암각화 속 호랑이, 사슴, 고래가 사라지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위기는 여러가지 형태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실시된 조사에서 암면의 균열과 박리박락, 초본류 서식, 오염물 부착, 암석의 약화 등이 다양하게 보고되었습니다.  

 

1971년 이후 매년 반구대암각화를 촬영했다는 화가 김호석은 “1972년과 2008년 암각화를 찍은 사진을 비교해 120곳이 넘는 훼손 부분을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김호석에 따르면 암각화 오른쪽 끝의 호랑이 머리는 전체가 사라졌고 고래와 유영하는 상어는 지느러미를 포함한 중간 부분이 날아갔습니다. 고래들도 몸통과 지느러미 일부가 훼손됐고, 중앙 상단의 고래와 노루 그림은 바로 위 암면이 크게 떨어져나가 함께 탈락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육지동물, 고래 등의 그림. 

2011년에는 울산대 반구대암각화 유적보존연구소에서 “2000년 이후 훼손 속도가 그 전보다 두 배나 빨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소는 동국대박물관(1972년), 울산대박물관(2000년), 울산시(2008년)의 보고서에 실린 반구대암각화 사진을 정밀 분석한 결과 1972~2000년 암면 탈락, 균열 확장 부분이 38곳이었는데, 2000~08년 18곳이 추가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반구대암각화의 주암면에 탈락 및 박락의 형태로 표면이 유실된 면적은 3만9027㎠로 약 23.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가 조성된 이래 수천 년 간 축적된 결과이긴 하지만 훼손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는 데 참고할 만한 자료입니다.

 

2010년 반구대암각화를 둘러본 외국인 학자의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한국의 암각화들을 둘러보니, 설명문 등 전시와 관련한 시설은 잘 돼 있는데 반해 정작 유적 보호 조치는 되어 있지 않다. 울산의 바람과 달리 반구대암각화의 유네스코 등재는 (이런 상황에서라면) 불가능하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