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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도피 한보 정태수 아들… 5개국 찰떡공조 ‘송환 작전’

입력 : 2019-06-23 19:31:44 수정 : 2019-06-23 19: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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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시간만에 영화같은 국내 압송/ 322억 횡령 스위스 계좌 빼돌려/ 2년전 측근 “美 체류” 인터뷰 계기/ 타인 신분으로 에콰도르 거주 확인/ 현지 당국, 한국 檢에 출국사실 통보/ 파나마서 구금해 두바이서 체포/ 정태수 키르기스스탄 체류 정보/ 법무부, 당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
도피 21년 만에 중미 국가인 파나마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씨(가운데)가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해 고개를 숙인 채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오전 6시35분 파나마 토쿠멘 국제공항에 ‘류 션 헨리’라는 미국인 시민권자가 도착했다. 동양인 외모의 류씨는 파나마 공항에 입국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하지만 류씨의 지문을 확인한 파나마 이민청은 류씨의 입국을 막았다. 류씨는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으로 지정됐던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의 아들 정한근씨였다. 지난 21년간의 도주·잠적 행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23일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은 회삿돈 322억원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피한 정씨의 체포 및 국내송환 과정을 공개했다. 정씨의 체포과정은 한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에콰도르 내무부는 지난 18일 정씨가 LA를 최종 목적지로 삼아 파나마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한국 검찰에 통보했다. 정씨가 탑승한 파나마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1시간 전이었다. 정씨의 출국사실을 통보받은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에 연락해 HSI 파나마지부를 통해 파나마 이민청에 정씨의 수배사실을 통보했다. 이를 토대로 파나마 이민청은 18일 파나마 공항에 도착한 정씨를 입국 거부한 뒤 공항 내 보호소에 구금했다.

정씨를 구금한 파나마 이민청은 곧바로 현지 한국대사관에 구금사실을 알렸고, 이를 전달받은 검찰은 법무부와 외교부, 경찰청 등과 협의해 정씨를 브라질과 두바이를 거쳐 국내로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주파나마 한국 영사와 파나마 이민청 직원이 정씨와 동행해 7시간에 거쳐 파나마에서 브라질로 이동했다. 이후 주브라질 상파울루 한국 영사와 브라질 연방경찰이 브라질에서 두바이로 14시간에 걸쳐 정씨를 이송했다. 두바이에 호송팀을 급파한 검찰은 21일 오전 3시55분 두바이에 도착한 정씨를 인도받아 22일 오전 3시35분 국적기인 대한항공 편으로 국내로 최종 송환했다. 파나마에서 한국까지 꼬박 57시간이 걸린 송환작전이었다.

정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가 보유한 루시아석유주식 매각자금 322억원을 횡령해 스위스의 비밀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이 같은 혐의로 1998년 6월 서울중앙지검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은 뒤 도주했다. 그해 7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영장이 집행되지 못했다. 검찰은 정씨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임박하자 2008년 9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 및 횡령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후 정씨의 소재를 추적하던 검찰은 2017년 정씨가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측근의 인터뷰가 방송된 일을 계기로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정씨의 소재 추적에 나섰다. 정씨는 국내에 거주 중인 캐나다 시민권자 A(55)씨의 신분으로 캐나다 영주권과 미국 시민권을 차례로 취득한 뒤 2017년 7월 에콰도르에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의 에콰도르 내 소재지를 파악한 검찰은 에콰도르 법원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지만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이에 검찰이 우회적 방안으로 에콰도르 내무부에 정씨를 강제로 추방해 달라고 요청했고, 에콰도르 당국은 이를 받아들여 정씨의 출국사실을 미리 알려주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검찰이 정씨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정 전 회장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 전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의 시작인 한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자 현재 2000억원대의 세금을 체납 중이다. 1923년생인 정 전 회장은 횡령으로 2심 재판을 받던 2007년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사라졌다.

정 전 회장은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법무부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정 전 회장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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