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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학종’은 신뢰를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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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16 21:18:27 수정 : 2019-06-16 21: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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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교활동 평가 불구 / ‘깜깜이 전형’에 공정성시비 / 교사·입학사정관 불신의 골 / 고교·대학 간 소통·협력 절실

기승전 ‘대학입시’인 한국에서 교육부의 가장 큰 고민 거리 중 하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숙명여고 내신 비리 사건과 드라마 ‘SKY캐슬’의 인기로 학종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대입 정책을 다루는 당국자들의 부담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분위기다. 현행 대입은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내용을 평가하는 ‘수시’와 수능 성적으로 뽑는 ‘정시’로 나뉜다. 수시인 학종은 내신과 동아리·봉사 활동 등 다양한 학교 활동을 평가하는데,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의 핵심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대학입시 개편 공론화 조사에서 팽팽하게 맞섰던 교육 시민단체들은 정시전형 확대파와 반대파로 갈려 연일 논쟁 중이다. 논란의 핵심에는 공정성 시비가 있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514호 법정.

이천종 사회부 차장

“대학입시와 직결된 중요한 절차로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고 투명성·공정성의 요청도 매우 높은 고등학교 내부 정기고사 성적처리 절차와 관련하여 비단 숙명여고뿐 아니라 다른 학교들의 투명성·공정성까지도 의심의 눈길을 피하지 못하게 하였고….” 숙명여고 내신 비리 사건을 맡은 이기홍 판사의 판결문은 준엄했다. 이 판사는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씨의 업무방해 혐의 전체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판결문의 핵심은 ‘입시 공정성 훼손’이었다.

채점 기준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전형’이어서 결과적으로 있는 집 학부모가 유리하다는 금수저 전형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미로 게임처럼 복잡한 학종을 준비하려면 부모의 도움이 필수다. 부모가 수많은 입시설명회를 다니며 발품을 팔아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거나 ‘김주영 쓰앵님’(고액 입시 컨설턴트를 빗댄 말)을 쓸 재력이 있어야 한다. 혹시 ‘아이가 시험 공부만 잘하면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있다면 ‘입알못’(입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필자처럼 한 판 시험으로 승부를 본 ‘학력고사’ 세대 학부모들이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맞벌이 공무원으로 두 자녀를 학종으로 대학에 보냈다는 A씨는 “아이들 입시 준비하는 게 고시 준비 때보다 버거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교수들의 ‘미성년 자녀 논문 공저자 끼워넣기’ 실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교육부가 지난달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7년 이후 전국 총 50개 대학 소속 교수 87명이 139건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등재했다. 이들 자녀 상당수는 유명 대학에 합격했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 때문에 올해부터 소논문에 대한 내용을 기재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교사들 스스로 학생부를 ‘사(死)기부’라고 비아냥대는 현실에서 언제든 또 다른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교육부는 4∼5월 두 달간 전국을 돌며 6차례에 걸쳐 ‘고교·대학 원탁토의’를 진행했다. 학종의 신뢰도를 개선하려고 기획된 행사로, 참석한 교사와 입학사정관은 총 250명에 달했다. 이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나눈 발언록을 입수해 살펴봤다. 교사와 입학사정관이 바라보는 학종은 ‘학생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수업하고, 이를 평가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였다. 하지만 발언록 곳곳에서 교사와 입학사정관 사이에 깊이 팬 불신의 골이 엿보였다.

“입학사정관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이 객관적이고 신뢰가 가도록 공개·공유하면 좋겠다”(교사), “학생의 성장 가능성과 잠재능력에 대해 보다 자세하고 솔직하게 기재해 달라”(입학사정관).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이런 맥락의 발언은 수두룩했다. 못 믿는다는 얘기다.

다행히 양측의 해법 만큼은 일치했다. 고교와 대학의 소통과 협력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바라는 입시정책에 대한 신뢰도 구축의 핵심이기도 하다. 교육당국이 힘을 모을 지점이 바로 진정한 소통 채널의 구축인 셈이다. 한 교사는 “2022년에 이런 기사(대학과 학교, 사회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신뢰)가 나왔으면 좋겠음”이라고 말했다. 맞다. 창의력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삼남매를 자녀로 둔 학부모로서 그 기사를 하루라도 빨리 쓰고 싶다.

 

이천종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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