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때 카운터파트로 활동했던 양국 협상 대표단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상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3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최근 인터뷰를 문제삼으며, 미국을 향해 “올해 말까지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갖고 나오라”고 직격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29일(현지시간)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실질적 진전을 이룰 여건이 조성을 주문하며 ‘경제적 압박’을 통한 북한 비핵화를 재강조했다. 북·미 정상의 핵심 측근들이 잇따른 강경 발언으로 미뤄 볼 때 북한 비핵화 협상 경색 국면의 장기화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
최 부상은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24일 “북한이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한다”며 이른바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 것에 대해 공격적 반응을 보였다. 최 부상은 “경제봉쇄로도 우리를 어쩔 수 없게 되자 군사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어이 우리 제도를 무너뜨려 보려는 어리석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가 제시한 시한부 내에 자기 입장을 재정립해 나오지 않는 경우 미국은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말까지 새로운 접근법을 갖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미 행정부 북핵협상 실무진을 겨냥한 최 부상의 비난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일 최 부상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 대해서도 “멍청해 보인다”며 “앞으로 계속 그런 식으로 사리분별 없이 말하면 당신네한테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지난 17일에는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저질적인 인간”이라며 원색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최 부상의 발언에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의회전문매체 ‘더힐’이 주관한 ‘뉴스 메이커 시리즈’ 대담에 출연해 ‘3차 정상회담이 여름까지 열릴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모른다. 나는 모른다”며 “우리는 두 정상이 만날 경우 실질적 진전을 이룰 여건을 분명히 조성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핵화 협상 전망에 대해 “어려운 도전이다. 그것이 풀리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계속 적용해 나가는 동안 북한을 비핵화할 또 하나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없다면 대북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해 북한의 입장변화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폼페이오 장관은 이어 “여러분은 나의 팀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다녀온 걸 봐왔다”며 “러시아 및 중국 방문이 동맹인 한국 및 일본과 함께 협력해 국제적 제재 공조를 확장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중국과의 국제공조를 강조함으로써 북한 ‘우방’들의 국제 제재 이탈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볼턴 보좌관 또한 북한을 상대로 한치 양보 없는 ‘강대강 대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25일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6자회담’에 대해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 또한 경제적 압박과 북한의 태도변화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논의한 것으로 보이는 ‘다자간 협상’ 방식과 ‘대북제재 완화’ 방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한 셈이다. 북·미 양국이 서로의 입장 변화만을 요구하고 있어 비핵화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장기간의 기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선형·조병욱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linea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