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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호숫가 오두막처럼… ‘작은 집’ 살아볼까

입력 : 2019-01-30 10:00:00 수정 : 2019-01-29 16: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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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도 완성형 목조주택 선봬/4주 만에 완성 배송·설치 이뤄져 인기/크기는 도로 운송이 가능한 최대 수준/
경량목구조 골격에 유리솜 채워 단열/나무 수축·팽창까지 고려한 공법 눈길/기본형 제작비 4380만원∼6080만원선
“사람들 대부분은 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이, 이웃들이 소유한 정도의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사실상 평생을 불필요하게 가난에 쪼들리고 있다. 늘 더 많이 얻으려는 궁리만 할 뿐 모자란 대로 만족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미국 매사추세츠 월든 호숫가 5평짜리 오두막에서 살며 검소한 삶에서 나오는 내면의 풍요로움을 예찬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현대인에게 ‘숲 속 작은 집’이란 환상을 유산으로 남겼다.


삶의 지침서로 손꼽히는 소로의 수필 월든에는 작은 집을 권하는 구절로 가득 차 있다. “상자 속에서도 얼어죽지는 않을 텐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보다 크고 화려한 상자 속에 살며 세를 지불하느라 죽도록 고생하고 있다. … 집을 소유한 농부는 집 때문에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질 뿐이며, 오히려 집이 그를 소유한 셈이 되고 만다.” 200여년 전 작은 집에서 안분지족을 권한 철학자의 한탄은 ‘작은 집(Tiny house) 운동’으로 이어진다. 서구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빚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큰 집을 버리고 14평 이내 작은 집에서 소비도 최소한으로 줄이며 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미국에선 2013년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로 많은 가정이 재정 파탄을 겪으면서 작은 집 운동이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일부 지역에선 노숙인 문제의 대안으로 작은 집 운동이 검토되고 있다.

4주면 제작·배송이 끝나는 간삼생활디자인의 ODM 모습.
일본에서도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무인양품이 2004년 ‘나무의 집’, 2007년 ‘창의 집’, 2014년 ‘세로의 집’ 등 기존 관념을 깬 양산형 주택을 시판한 데 이어 2017년 2.75평짜리 오두막 ‘무지 헛(MUJI HUT)’을 300만엔에 내놓아 화제가 됐다. 산과 바다, 정원 등 자신의 좋아하는 장소에 놓기만 하면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생활한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무인양품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보통사람에게는 낯설지만 국내 3대이자 세계 37위 건축설계기업인 간삼건축이 자회사 간삼생활디자인을 통해 지난해 10월 6평(20㎡)짜리 작은 집을 내놨다. 이름은 오두막의 영문 약칭이자 ‘어디든 설치 가능한 주택(Off-site Domicile Module)’을 뜻하는 ‘ODM’. 주문이 들어오면 공장에서 4주 만에 완성해 배송·설치가 이뤄지는 이동식 목조주택이다.

경기 성남시 태봉산 자락 숲 속에 설치된 쇼룸에서 직접 살펴본 ODM은 가로 6.6m, 세로 3m의 직사각형 본체에 높이 3.8m의 한쪽으로 약간 치우친 뾰족지붕이 올라간 간결함이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ODM 제작 모습(위)과 내부 시설 모습.
간삼생활디자인 제공
현재 ODM의 크기는 도로교통법상 대형 트럭에 실어 운송가능한 상한선이자, 까다로운 규제를 피해 농지에 지을 수 있는 농막 허용 기준이다. 다만 길이는 8.1m까지 확장할 수 있다. 주거용 ‘네스트’와 카페나 작업실 등으로 쓸 수 있는 상업용 ‘팝’으로 나뉘는데 주방과 샤워실까지 갖춘 네스트에는 김치냉장고와 인덕션, 싱크대 및 수납장까지 설치됐다. 주방과 맞닿은 욕실은 좁다는 느낌 없이 상당한 넓이로 구성됐다. 바깥은 영하의 추위였지만 전기 온수 보일러로 덥혀진 ODM 안은 훈훈했다. 캐나다산 경량목구조로 골격을 세운 후 단열재로 유리솜을 가득 채우는데 목조 자체가 워낙 단열효과가 좋다고 한다.

이처럼 간결한 ODM 내외부에는 건축가 5명이 반년에 걸쳐 깊은 고민을 한 결과가 담겨 있다는 게 간삼생활디자인의 설명이다. 사각형 자작나무판 사이 틈은 기온에 따른 나무의 수축과 팽창을 고려해 까다로운 ‘마이너스 몰딩’ 공법을 택한 결과다. 또 뾰족지붕 형태를 내부에도 그대로 살려 층고가 최고 3.8m로 높아졌는데 이는 실내를 넓게 느끼게 하기 위한 설계였다.

문제는 가격이다. 네스트 기본형의 경우 내장재 등에 따라 최저 4380만원에서 최고 608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실제 설치를 위해선 전기 인입 및 상·하·오수관 설치 등 현지 조성비용이 약 1000만원 정도 소요된다. 이윤수 간삼생활디자인 대표는 “면적은 작지만 큰 집과 비교해 안 들어가는 게 없다. 30평 주택 만들 때 들어가는 공정이 모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반조립된 상태로 배송돼 현장에서 완성되는 주택은 여럿 있지만 공장에서 100% 완성해 배송하는 집은 ODM이 최초다. 현재 총 3건의 계약이 이뤄져 공장에서 한창 새 ODM이 생산되고 있다. 이 대표는 “경기 양평에 2월 말 2채가 세워지고 4월에는 제주로 1채가 페리선편으로 실려간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진 주로 “내 땅을 어떻게 활용할까”며 고민하던 이들이 ODM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숲속 작은 집’에 대한 꿈만 간직한 보통사람에겐 ‘땅이 먼저’인 게 슬픈 현실이다.

글·사진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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