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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탈원전, 소동파라면 뭐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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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8 21:32:35 수정 : 2019-01-28 17: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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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의 정문의 일침 사설도 / 송영길의 공론화 공개 요구도 / 안중에 두지 않는 청와대 독선 / 무엇이 옳은지 원점서 재고해야  소동파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중국 북송(960~1127년)의 지식인 소식(蘇軾). 문인으론 행복한 삶을, 관료로는 굴곡 많은 삶을 산 인물이다. 왜 벼슬길이 평탄치 않았나. 북송이 개혁정책으로 채택한 왕안석 신법(희녕변법·熙寧變法)을 둘러싸고 ‘신법당’과 ‘구법당’이 살벌한 진영 대결을 벌이는 틈바구니에 낀 것이 화근이다. 대문호 소식은 신법당의 표적이 돼 좌천과 유배 등 고초를 겪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만도 여러 번이다.

소식은 구법당으로 분류된다. 그렇다고 개혁 필요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왕안석 신법은 안보 위기와 재정난을 타개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적어도 의도만으론 착한 정책조합이다. 청묘법(靑苗法)이 대표적이다. 왕안석은 백성에게 돈을 빌려주고 원금·이자를 돌려받는 청묘법을 추진했다. 세 가지 이득이 있다고도 했다. 보릿고개 때 곡물가 앙등을 막고,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고, 국고를 불린다는 것이다. 이 장담대로 국리민복에 보탬이 됐다면 소식은 왕안석의 응원군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현실은 달랐다. 가난한 이들이 나랏돈을 쓰다가 빚구덩이에 파묻혀 끝내 투옥되기 일쑤였다. 부국강병을 위한 탁상행정 발상이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다 못해 대규모 옥사까지 부른 것이다. 소식은 결연히 붓을 들어 신법의 문제점을 성토했다. 권력층의 미움을 산 이유다. 신법당 무리는 “소식은 홍수가 나고 도둑이 날뛰는 것 모두 신법에서 비롯됐다며 오히려 기뻐하고 있다”고 모함했다. 벼슬길이 평탄할 까닭이 없었다.

선무당 사람 잡는 식의, 현실과 유리된 개혁이 북송만의 불행은 아니다. 역사엔 아류가 넘쳐난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문재인정부의 정책조합은 어떤가. 탈원전 정책 하나만 봐도 답은 뻔하다. 탁상행정 발상의 덫에 걸린 것은 아닌지, 청와대 스스로 단단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기류는 낙관을 불허한다.

집권 여당 중진인 송영길 의원은 얼마 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 중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청와대 제동에도 굴하지 않았다. 송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론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3·4호기로 화력발전을 대체하면 원자력 기술 인력과 생태계도 무너지지 않고 원전 수출 산업 능력도 보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탈원전은 청와대의 성역이다. 그런데도 여당 중진이 일침을 가한 것은 그만큼 재검토가 절박하다는 뜻이다.

어찌 송 의원뿐이겠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국민투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 여론 향배도 마찬가지다.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범국민서명운동본부’가 33만명 넘는 서명을 받아 청와대에 국민 청원서를 전달하지 않았나. 편협하지 않다면, 교조적이지 않다면 더 늦기 전에 정책 오류 가능성을 따져볼 좋은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는 최근 “온난화를 막으려면 원전이 필요하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한국 사례를 언급한 사설이다. 정문의 일침이다. 해외 저명 석학들도 탈원전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만의 반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때 원전 반대에 앞장섰던 ‘참여과학자모임(UCS)’이 원전 찬성으로 선회한 사실도 유념할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는 “원자력이 기후변화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잘라 말한다. 과거 원전에 등을 돌렸던 미국, 영국 등도 기본 노선을 바꿨다. 세상은 청와대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데도 꿈쩍 않는 청와대를 어찌 봐야 하나. 1000년 전 북송을 뒤흔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선의 병이 깊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소식은 신법을 밀어붙이는 조정에 어찌 호소했을까. 청와대는 소식의 상소문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북송이 신법 실시 60년 만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는 것도 되새기면서 말이다. 소식은 이렇게 썼다. 일획, 일획에 피눈물이 흐른다. “옛말에 백 사람의 의견이 전부 다 잘못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법을 반대하는 의견은 백 사람이 아니라 천하만민입니다. 어째서 폐하는 온 천하를 상대로 고집을 부리시는 것입니까?”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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