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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부디 귀만은 막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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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7 23:41:56 수정 : 2019-01-17 23: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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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의 민심 역주행은 / 억지와 고집 버리지 않은 탓 / 곳곳에 삐걱대는 소리 나는데도 / 고치지 않으면 붕괴 못 면할 것 이제 겨우 20개월이다. 50년 견딜 튼튼한 집을 짓겠다던 정권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권부의 핵심에서 기강이 무너지고, 서민의 살림살이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놓고 숱한 말들이 오가지만 사태의 진앙은 불통이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의 소리에 귀를 막으면 반드시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런 생각으로 한비자의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옛날 한비자가 살던 시절에 우경이란 재상이 집을 지었던 모양이다. 공사를 하기 전에 목수가 우경에게 조언을 했다. “서까래는 생것이고 흙은 축축합니다. 재목이 생것인 경우에는 굽어지고 흙이 축축하면 무거운 법입니다. 굽은 재목으로 무거운 흙을 지탱하면 집이 완성된 후에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우경이 손사래를 쳤다. “아닐세. 서까래는 마르면 반듯해지고, 흙이 마르면 가벼워지네. 집이 완성되어 흙과 재목이 마르게 되면 날이 갈수록 가벼워져 오래되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네.” 목수가 어쩔 수 없이 우경의 말대로 집을 지었으나 집은 얼마 못 가서 무너지고 말았다. 전문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밀어붙인 결과였다.
배연국 논설위원

오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어찌 이리도 똑같은가.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 방향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에선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아예 대못을 박았다. 잘못된 정책 기조를 그냥 둔 채 기업인들을 만나 투자를 닦달한다. 마치 허약한 서까래 위에 무거운 흙을 얹는 격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문제가 생기면 “경제 체질 변화에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우긴다. 시간이 지나면 흙과 재목이 말라 가벼워질 것이라던 우경 재상의 억지와 빼닮았다.

소통정부를 표방한 정권에서 불통의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외곬 행보와 무관치 않다. 소통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귀를 여는 것에서 출발한다. 초록 동색의 사람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면 생각의 환류가 일어날 수 없다. 충분한 분석과 토론 없이 나온 대안을 최선이라고 믿는 집단사고의 폐해가 나타나기 십상이다. 버젓이 일탈행위를 저지르고도 합리화하거나 엉터리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이 빈발한다. 요즘 집권세력에 자주 발병하는 내로남불 증상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른다. 소통도 이와 같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존중의 정신이 전제돼야 한다. 상대를 적폐로 간주하면 그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나만 옳다는 무오류의 환상에 빠지면 자신의 잘못을 고칠 기회가 영영 사라진다. 오류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방통행식 국정이 심해지고 상대와의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다.

이런 분열적 증상을 치유하려면 유아독존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일찍이 공자는 소통의 조건으로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라는 네 가지를 강조했다. ‘자기 뜻대로 하려는 자의가 없고(무의), 기필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고(무필), 억지로 강행하려는 고집이 없고(무고), 생각이나 주장에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무아)’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의 소통방식은 공자와는 거리가 멀다. 4무(無)보다는 4유(有)에 가깝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의 뇌에는 정의감과 우월감이 가득하다. 이런 선민의식은 자기 생각을 기필코 관철하겠다는 독단과 오기를 부른다. 억지와 고집이 활개 치고,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사사로움이 고개를 든다. 급기야 집권세력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는 소리가 다른 쪽에서 나오는 지경이다.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는 취임사에서도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이다. 하지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데도 끝내 고치기를 거부한다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시간은 있다. 삐거덕 소리가 난다는 것은 집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부디, 귀만이라도 막지 마라.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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