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그대로, 접근 방식은 수정”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14일 최근 상황을 ‘사실상의 패러다임 변화’로 규정했다. 박 교수는 “‘포괄적 비핵화’에서 ‘단계적 비핵화’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북·미 협상의 실질적 타결 도출을 위한 과정으로 풀이했다. 북핵 문제의 진전을 위해서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필요하고, 단계적 비핵화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지난해 말부터 이미 인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방한했을 당시 우리 정부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비핵화 로드맵에도 이 같은 단계적 조치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간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 등으로 미뤄 볼 때 이미 (완전한) 일괄타결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시 손 잡을까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양국 고위급회담이 이번 주 후반에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해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앞서 뉴욕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행 방식의 접근 변화가 있다고 해서 비핵화의 종착점으로서의 CVID, 혹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에 변화가 있지는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방식은 여전히 FFVD로, 이에 대해서는 변화가 없다”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이행 방법에 변화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연합뉴스 |
일각에서는 미국이 단계적 접근법으로 돌아서는 것이 접근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비핵화 협상 의지의 후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비핵화를 후순위로 남겨두고 ICBM을 중심으로 북·미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북한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조치”라고 꼬집었다. ICBM으로 초기 제재 완화의 문을 열면 남·북·미 혹은 북·중 간 경제협력이 진전되고,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는 원칙이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원칙을 꺾었다는 것이다. 내년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해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안에 북·미 협상에서 ‘완전한 비핵화’ 관련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한 발 물러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홍주형·정선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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