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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열풍·트럼프 ‘못된 입’, 워싱턴 정가 거센 女風 불렀다 [세계는 지금]

입력 : 2018-11-13 06:00:00 수정 : 2018-11-12 21: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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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간선거 ‘여성 정치인’ 대약진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기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나눠 가진 2018년 미국 중간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여성 정치’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는 최초의 여성 무슬림 하원의원과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하원의원이 탄생하는 등 여성 정치인의 진출이 어느 때보다 도드라졌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29세의 여성 하원의원도 내년부터 워싱턴 의사당에 모습을 드러낸다. 최초의 한국계 여성 하원의원도 등장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성 정치인들의 등장이 백악관 중심의 ‘강경 이민정책’에 변화를 줄지도 관심사이다. 마침 이번 선거는 ‘미투운동’(성폭력 고발 운동) 발발 1주년을 넘긴 무렵에 치러져 의미가 각별했다. 

◆상·하원 535명 중 최소 118명 여성의원 등원

표차가 적어 재개표를 해야 할 선거구들을 제외하더라도 11일 현재까지 상원 100명, 하원 435명 의원 중 내년 의사당에 등원할 여성 정치인은 최소 118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최대의 숫자이다. 상원 23명, 하원 84명으로 107명의 역대 최대 여성의원이 배출된 기존 기록을 깨게 된다. 초선 의원으로 좁혀 보면 ‘여성 정치의 해’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올해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여성은 31명에 달한다. 여성 정치인이 다수 선택됐다는 평가를 받은 1992년 대선·의회 동시선거 당시 초선 7명을 포함해 24명을 배출했던 때보다 크게 증가했다. 여성의원의 증가는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하원 96의 여성의원 당선자 중 84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 소속은 초선 의원 31명 중 30명이 해당된다.

우선 최초의 여성 무슬림 하원의원 2명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일한 오마르(37)와 라시다 탈립(42)으로 각기 미네소타주와 미시간주에 출마해 당선됐다. 오마르는 소말리아계 난민 출신이며, 탈립은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다.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오마르는 어린 시절 내전을 피해 케냐 난민 캠프에서 4년을 보냈다.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2016년에 미네소타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2년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이민자 가정의 14남매 중 맏딸인 탈립은 무슬림 여성으로는 최초로 2009년부터 4년 동안 미시간주 하원의원을 지냈다.

최초의 원주민 여성 하원의원도 2명이 탄생했다. 캔자스주와 뉴멕시코주에서 샤리스 데이비스(38)와 데브 할랜드(57)가 동시에 당선된 것이다. 모두 민주당 소속이며, 한때 격투기 선수로 활동했던 데이비스는 레즈비언이어서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이번 중간선거는 최연소 연방의원 기록도 갈아치웠다. 1989년 10월생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29)는 뉴욕 제14선거구에서 득표율 78%의 몰표를 받으며 당선됐다. 코테즈는 앞서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도 유력 차기 원내대표로 거론됐던 10선의 현직 의원 조 크롤리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최초의 한국계 여성 하원의원도 등장했다.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주 제39선거구에 출마한 영 김(56) 후보는 20년 만의 한국계 의원 탄생은 물론 최초의 한국계 여성 하원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갖게 됐다. 보수적인 텍사스주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최초의 라틴계 여성 하원의원이 동시에 등장했다. 베로니카 에스코바(48)와 실비아 가르시아(68)가 주인공으로 그동안 유독 민주당 여성 정치인의 등장을 막았던 텍사스주의 ‘담장’을 허물었다. 텍사스주는 히스패닉 유권자가 40%에 달하지만 민주당 소속의 연방의원은 배출하지 않았다.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아야나 프레슬리(44)가 최초의 흑인 여성 하원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여성 상원의원은 35곳의 선거구에서 11명이 배출됐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리를 내줬다가 되찾은 선거구 중 3분의 1에 해당되는 곳에서 여성 의원 당선자가 배출됐다. 테네시주에서는 이 지역 최초로 공화당 소속 여성 상원의원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마샤 블랙번(66)으로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의 선거구를 물려받았다. 네바다주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재키 로젠(61)이 현역 상원의원을 눌렀다. 애리조나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양성애자인 커스텐 시네마(42)와 공화당 소속의 마샤 맥셀리(52)가 재검표를 기다리고 있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9명의 여성 정치인이 승리를 거뒀다.

◆미투운동 거치며 여건 성숙했지만 한계 여전

여성 정치인의 도전과 당선사례가 늘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이번에 획기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미투운동과 관련이 깊다. 지난해 10월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불거진 뒤 본격화된 미투운동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은 권력의 정점인 워싱턴 정치권도 강타해 민주당 앨 프랭컨 상원의원과 같은 당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 공화당 트렌트 프랭크스 하원의원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잇따라 사임하게 했다. 여성의 각성과 남성 의원들의 추문에 워싱턴 정치도 변화 바람에 노출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도 과거와는 다른 환경을 조성했다.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미국인이 워싱턴 등지에서 열린 ‘여성의 행진’에 동참했으며, 50개주 곳곳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 목소리가 분출했다. 비정부기구인 ‘쿡 폴리티컬 리포트’의 데이비드 와서맨 편집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빼놓고는 이번 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의 약진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 참여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 정치인을 위한 선거자금 모금액도 늘었다. 미 비영리기구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전달된 모금액 중 36%가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나왔다. 이는 그 이전 선거의 28%보다 크게 늘어난 비율이다. 여성 유권자들의 선거 모금액은 대부분 민주당 후보에 집중됐다. 그러자 여성이 남성 선거구에 도전한 것은 물론 여성끼리 맞붙은 곳도 증가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의원과 주지사 자리를 놓고 여성끼리 1위와 2위를 다툰 선거구만 33곳에 달했다.

숙제도 여전하다.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적인 차별과 싸워야 하며, 외부와의 연대도 남성 정치인들에 비해 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도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지아주 최초의 흑인 주지사를 꿈꿨던 스테이시 아브람스(44)는 191만표를 얻어 득표율 48.7%를 기록했지만 선거에서 패배했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여성 정치인 공천은 민주당에 치우친 면이 많다. 럿거스대 미국여성정치센터(CAWP)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하원의원 경선에 나선 여성 정치인은 476명에 달한다. 2012년의 298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소속 정당별로 보면 공화당은 120명에 그쳐 356명이 경선에 나선 민주당에 크게 못 미쳤다. 공천을 받은 숫자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줬다. 민주당은 하원의원 후보로 185명의 여성 정치인을 공천했지만, 공화당은 52명에 그쳤다. 이는 고스란히 워싱턴 정치현장에서 투영된다. 공화당의 현역 여성 하원의원은 소속 의원들 중 10%에 불과하지만, 민주당은 낸시 펠로시 원내대표가 다시 하원의장 도전을 선언하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대선 경선 출마 가능성을 높이는 등 여성 정치인들이 강력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 정치의 팽창 혹은 한계는 2년 뒤 치러질 2020년 대선·의회 동시선거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될 것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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