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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대통령의 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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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3 21:44:11 수정 : 2018-09-16 10: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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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위기로 모는 것은/재물 탐하는 小人이 아니라 君子/내 생각만 옳다는 독선에 빠지면/국가 재앙은 피할 수 없을 것 누가 나라를 망치는가? 군자인가 소인인가? 이런 의문에 빠진 것은 중국 명나라 선각자 이탁오의 죽비를 맞고서였다. 놀랍게도 그의 대답은 소인이 아니라 군자였다.

도덕과 학식이 높은 군자는 모든 이가 존경하고, 탐관오리와 같은 소인은 뭇 사람의 지탄 대상이다. 그런 빤한 이치를 놓고 이탁오는 상식 밖의 결론을 내렸다. 도대체 왜? 백성의 고혈을 짜는 소인이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피해의 범위가 국지적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소인의 행동이란 기껏 남의 재물을 탐하는 정도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백성의 추앙을 받는 군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군자에게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고, 그가 내린 결정은 공동체의 규범이 된다. 이런 인물이 잘못된 길을 택하면 나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오도된다. 국가가 회복하기 힘든 재앙에 빠질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탁오가 “탐관(貪官)의 해악은 당대에 미치지만 청관(淸官)의 해악은 아들 손자에까지 미친다”고 일갈한 연유다.

그 생생한 사례를 국가 부도에 직면한 아르헨티나에서 목도한다. 12년을 집권했던 키르치네르 부부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일자리를 만든다며 공무원을 두 배로 늘리고 복지 보따리를 풀어 젖혔다. 재정은 바닥나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재앙의 씨앗은 두 세대 전 국민적 추앙을 받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 때 이미 뿌려졌다. 그의 인기 비결은 세금 살포를 통한 공짜 복지였다. 그 결과 한때 세계 6위를 구가하던 경제대국은 국제사회에 스무 번 이상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불량국가로 전락했다. 국가를 오도한 군자의 해악이 아들 손자 대에 미친 격이다. 이런 일이 비단 아르헨티나뿐이겠는가.

군자의 또 다른 위험은 도덕적 우월감이다. 군자는 스스로 깨끗하고 떳떳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란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에겐 반개혁의 잣대를 들이댄다. 상대의 의견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선 국민의 지지율은 독이다. 높은 지지율이 추진력으로 작용해 정책의 과속을 부르는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놓고 군자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잘못된 소득주도성장으로 고용 참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대통령은 “올바른 기조로 가고 있다”고 확언한다. 대통령을 둘러싼 이들은 한술 더 뜬다. “통계가 잘못됐다”고 하더니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우긴다. 적폐 청산이 심각한 국론분열을 초래해도 대통령은 강력한 청산으로 정의를 세우자고 외친다.

대통령이 말한 정의는 국민 모두가 원하는 바이다. 하지만 명심할 점이 있다. 정의는 어느 누구도 독점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런 인간이나 집단이 만든 정의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내 주장만 옳다는 독선의 수렁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 이탁오가 “소인이 나랏일을 그르치면 구제할 수 있지만 군자가 나라를 그르치면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땅을 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통령이 자주 거론하는 포용과 소통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게 마음을 여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정의이고 상대는 적폐라고 생각하면 둘 사이에 천길 장벽이 생기고 국가는 찢어질 것이다. 관용의 실천이 수반되지 않은 포용과 소통은 아무리 다짐하더라도 화려한 포장지에 싸인 짝퉁일 뿐이다.

중국의 사상가 후스는 ‘자유보다 용인(容忍)이 중요하다’는 스승의 말을 평생 가슴에 간직했다. 용인이 없으면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자유도 질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10년 동안 비난을 받았지만 나를 미워하고 욕하는 이들을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다. 그들의 비난이 타당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걱정했고, 비난이 과해져 그들 자신의 인격을 해치면 나는 더욱 불안했다.”

지금 이 땅에 절실한 것이 바로 후스의 덕목이다. 정의는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게 삿대질하고 뭇매를 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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