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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대령 가족의 새해 다짐 / “나라 위해 죽는 것은 큰 영광” / 필부에게도 망국의 책임이 있고 / 방관적 태도는 역사에 죄 짓는 일 참 군인이 있다. 현역 대령인 그는 매년 새해에 특별한 통과의례를 치른다. 1월1일이 되면 아들을 앉혀 놓고 말한다. “아버지는 군인이다. 군인의 본분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야. 전쟁이 나서 내가 죽더라도 절대 울거나 슬퍼하지 마라. 나라를 구할 기회가 주어진 것만큼 영광된 일은 없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바란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맏이인 네가 가족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대령 부자의 통과의례는 햇수로 10년이 넘는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아버지의 당부는 어느새 아들의 신념으로 뿌리를 내렸고, 청년으로 자란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아버지가 다녔던 육군사관학교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자 망설임 없이 ROTC에 자원했다.

졸업 후 마침내 군인의 길에 들어선 아들은 아버지의 당부를 여동생에게 전했다. “오빠는 곧 군복을 입는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머니를 잘 돌봐 드려다오.” 청년은 대학생인 여동생의 손을 잡고 가족의 안위를 부탁한 뒤 올 3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전방으로 향했다.

잇단 방산비리와 각종 사건으로 군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 군이 북한의 위협을 무사히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누란의 안보위기에서 5000만 국민이 편히 발을 뻗고 안녕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마 대령 부자와 같은 참 군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행동에서 민족의 핏속을 흐르는 애국 혼을 본다.

1871년 미국의 로저스 제독이 최신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로 쳐들어오자 조선 병사들은 맨몸으로 대포에 맞섰다. 그들은 낡은 총을 쏘다가 총알이 떨어지면 돌을 던졌고, 돌이 떨어지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6·25전쟁 때 난생 처음 북한 탱크를 접한 젊은 군인들은 화염병을 안고 ‘괴물’ 밑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민족이 930여회의 외침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은 이런 애국심이 면면히 이어진 덕분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자 생존배낭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고작 며칠 분의 쌀과 라면 따위가 우리의 생명을 지켜줄 수는 없다. 국가와 국민이 공도동망하는 핵 재앙이 닥치면 길바닥의 풀뿌리인들 온전하겠는가.

배연국 논설실장
국가 안보! 거창한 얘기 같지만 시작은 국민 개개인의 자세와 의식이다. 작은 애국이 물방울처럼 모여 ‘애국의 동해바다’를 만든다. 나라는 그 구성원이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반드시 위험에 처한다. 국민의 안보관이 허약하면 국가는 남극의 빙벽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나라를 보존하는 일은 정치지도자나 군인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명나라의 붕괴를 지켜본 중국의 대학자 고염무는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망국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얘기다.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조국이 일본에 패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렇게 외쳤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그것은 나 자신이오.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내 조국에 조아(爪牙·손톱과 어금니)를 박게 했으며,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을 팔기를 허용하였소? 망국의 책임자는 바로 나 자신이오.”

조선의 멸망에서 국가 지도자인 고종과 매국노 이완용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들을 역사의 단두대에 올려놓고 단죄하는 것에 그쳐선 곤란하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전거복철(前車覆轍·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을 거울로 삼아 ‘국가의 수레’가 뒤집히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정인을 지목해 손가락질만 한다면 내가 배울 교훈은 사라지고 만다. 내가 빠진 역사, 내 책임이 없는 안보는 공허하다. 나는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지 않았다고? 아서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방관의 책임은 매국만큼이나 무겁다.

우리들 각자 ‘참 국민’ 안창호의 심정으로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에서 나의 책임은 과연 무엇인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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