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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잡아야 산다"… 웃돈만 1000만원 '담배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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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7 06:00:00 수정 : 2017-10-27 15: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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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성패 달려… '황금알' 확보 경쟁 뜨거워/마진 낮지만 매출은 전체 30∼40%/다른 상품 구매 '미끼상품' 역할도/기존 보유자 폐업 신청해야 재공고/양도·거래 못해 경쟁 갈수록 치열

최근 서울의 한 편의점을 인수한 이모(37·여)씨는 개업 직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바로 담배판매권(이하 담배권) 확보 때문. 기존의 담배권 보유자가 폐업 신청을 할 경우 이후 구청의 1주일 공모를 거쳐 담배소매인이 지정된다. 이씨는 권리 신청한 이후 다른 자영업자들이 신청하지 않을까 싶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행히 경합자가 나타나지 않아 담배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씨는 “담배권이 나오지 않으면 가맹점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특약까지 걸어놨었다”면서 “오픈하고 실제 운영해 보니 담배권 없었으면 어떡했을까 싶더라. 담배를 사러 오는 손님들이 다른 상품도 사기 때문에 담배권 확보 여부에 따라 편의점 성패를 가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25일 편의점 업계 등에 따르면 편의점 창업 성공의 바로미터는 담배권 보유 여부다. 담배의 마진율은 일반상품(약 30%)에 비해 훨씬 낮은 약 7~10%에 불과하지만, 개별 편의점 전체 매출의 약 30~40%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식품 소비 등이 많은 주택가에서는 전체 매출 대비 담배가 30%를 차지하지만, 유흥가 등의 도심이나 남초가 심한 공장지역에서는 50%를 상회할 정도”라면서 “담배 판매 여부에 따라 매출이 20~30%가량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담배는 편의점을 찾게 만드는 ‘미끼상품’이다. 담배를 사러온 이들이 다른 상품도 구매하는 비율도 상당하기 때문에 담배권 없이는 편의점을 창업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다. 아울러 담배제조사들이 편의점 내부에 시설지원비 명목으로 건네는 광고비가 월 30~50만원, 최대 200만원까지 달해 담배권으로 인해 생기는 부수입도 쏠쏠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담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물밑 경쟁이 펼쳐진다. 현행 담배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담매 소매업체 간 거리는 50m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미 담배권을 갖고 있는 편의점이 50m 이내에 있을 경우에는 담배권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담배권 보유 편의점을 피하면서도 새로운 담배권을 얻어 편의점을 창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편의점을 새로 창업하는 사람들은 담배권 보유에 따라 매장 오픈을 결정하는 ‘특별계약’을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와 맺기도 한다.

담배권은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 법인이나 업장에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업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나온다. 만약 담배권 보유 편의점을 인수하더라도 담배권은 이전 운영자에게 있기 때문에 이전 운영자가 폐업 신청을 해야 새로이 담배권을 공모를 거쳐 따낼 수 있다.

담배권은 사업자 간의 직접적인 양도가 금지되어 있지만, 1000만원 수준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는 계 편의점 업계의 정설이다. 거래가 금지되어 있는데 시세가 있는 역설적인 상황은 담배권 보유에 따라 ‘권리금’이 달라지는 형태로 거래가 되기에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편의점 운영을 넘기는 양도자가 담배권을 폐업하고, 새로이 운영할 양수자가 공모를 거쳐 담배권을 따내면 권리금을 5000만원을 받고, 담배권 공모에서 떨어지면 4000만원을 받는 식이다.

편의점 양수도자는 담배권 폐업을 은밀히 진행한다. 담배권은 편의점뿐만 아니라 철물점, 과일가게, 복권방 등 다른 자영업자들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담배권 폐업 소문만 들리기만 하면 인근 자영업자들이 지자체 홈페이지의 담배권 지정 공고창만 쳐다보며 너도 나도 신청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담배권 보유가 절실한 신규 편의점 창업자는 담배권 공모에서 떨어질 경우 담배권을 따낸 철물점, 과일가게를 찾아가 담배권 폐업을 부탁하며 뒷돈을 건네기도 한다”고 말했다.

담배권의 종류는 통상적으로 2가지로 나뉜다. 50m 안에 한 영업점에만 주어지는 담배권은 ‘일반 담배권’이라 부르고, ‘구내 담배권’이 또 있다. 지자체에 따라 기준은 다르지만 매장 면적이 100㎡ 이상이거나 5층 이상, 전체면적 2000㎡의 건물에 입점한 소매점에는 50m 내의 일반 담배권과 상관없이 구내 담배권이 주어진다. 구내 담배권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창고를 독립적으로 만들지 않고, 가림막 등으로 엉성하게 분리한 뒤 그 공간도 매장의 일부라고 주장해 구내 담배권을 따내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담배권 보유자를 둘러싸고 편의점 프랜차이즈 업계 간의 경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경기도 한 지역에서 담배권을 보유한채 A브랜드 편의점을 5년간 운영하던 김모(43)씨는 최근 폐업을 결심했다.(통상적으로 편의점 가맹계약은 5년이다) 3년 전 40m 거리에 있는 B브랜드 편의점이 구내 담배권을 갖고 들어오자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 그러자 새로 바뀐 건물주가 직접 편의점을 운영하겠다고 나섰고, 김씨는 건물주에게 편의점 인수 때 냈던 권리금을 요구했다. 건물주는 “내 건물에 내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데 권리금을 왜 내느냐”고 반발했고, 담배권이 승계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자 편의점 인수를 포기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B브랜드 편의점 본사가 김씨에게 접근해 구내 담배권 편의점 운영을 제시했다. B브랜드 편의점 운영자도 김씨의 편의점 때문에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아 불만을 제기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 그러나 김씨의 폐업 소문이 나자 기존 운영자가 반발했고, 결국 김씨는 일반 담배권을 그대로 보유한 채 인근의 한 자리에 A브랜드 편의점을 다시 창업했다. 편의점 업계 전문가는 “담배권 보유자를 둘러싼 편의점 브랜드 간의 경쟁은 흔한 일이다. 담배권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 브랜드 교체를 제시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담배권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실제 공모를 담당하는 지자체들은 담배권을 둘러싼 경쟁과 권리금 형태로 거래되는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항변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일일이 담배권을 거래하는 이들을 쫓기도 힘들고, 설령 파악했다 해도 돈이 오고 간 거래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면서 “분명 불법이기 때문에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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