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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원전과 맞닿은 감포 바다에…점점 잦아드는 해녀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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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7 19:17:35 수정 : 2017-07-31 14: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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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과 불편한 동거’ 경주 대본리 해녀마을
경주 대종천은 토함산에서 발원해 감은사지를 지나 감포 바다에 스민다.
하천이 끝나는 지점에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오래된 해녀마을인 대본리가, 오른쪽으로는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닿아 있다.
감포 바다는 7세기 신라왕의 능이자 해녀 어장이며 원전 온배수처리장이다.
“호이 호이” 해녀 숨비소리(숨을 내뱉는 소리)가 갈바람에 실리는 4월, 돌미역 채취가 한창인 대본리 앞바다 몽돌을 밟았다.
경주 나아리 해변에서 해녀들이 모여앉아 채취한 미역을 다듬고 있다. 멀리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여기 사람들은 그거 감기처럼 여긴다.” 언제부턴가 마을에 병이 돌기 시작했다. 한 집 건너 한 집 해녀들이 수술받았다. 병명은 갑상선암. 가볍게 본 증상 앞에서 일상은 쉽게 기울었다. 김추자(73·여)씨는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다 2013년 12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60년 넘게 감포 바다를 누빈 토박이 해녀의 목에 기다란 칼자국이 주름처럼 남았다. “의사가 하루라도 약 거르면 죽는다 카더라. 한줌 삼켜야 하루 버틸 수 있다.” 조영남(74·여) 해녀가 알약을 내보이며 말했다. 수술받은 지 4년이 지났지만 조씨의 고통은 여전하다. 대본리에서만 7명의 해녀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고, 4명은 수술을 면했지만 주기적으로 검사받으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 마을 해녀 절반 이상이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경주 대본리 해녀들. 왼쪽부터 김추자, 최선이, 조영남 해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경주 대본리 해녀들이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을 내보이고 있다.
최선이 해녀는 갑상선암 수술 한 달 전 죽음을 예감하고 가족 몰래 영정사진을 남겼다. 최씨가 본인의 영정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갑상선암은 노출된 방사능에 비례해 그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즉부터 (원전의 영향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파도가 높게 치면 자연스럽게 까물(바닷물)이 목으로 넘어온다. 목에서 피가 올라오는 건 예삿일이었다.” 해녀 최선이(75·여)씨가 쉰 소리를 내며 말했다. 최씨는 2010년 8월 갑상선암이 성대로 전이되면서 목소리를 잃을 뻔했다. “지금도 눈 감으면 바닷속이 선하게 보이는데 이젠 아파서 못 들어간다. 운 좋게 살았지만 사는 게 고통이다.” 최선이 해녀가 움푹 파인 흉터 위로 스카프를 칭칭 감았다.  
경주 대본리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이른 아침 물질을 위해 바다로 나가고 있다.
경주 대본리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이른 아침 물질을 하고 있다.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경주 나아리 해변에 높은 파도가 일고 있다. 법원은 지난 2월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한 수명연장 취소 판결을 내렸다.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해변에서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해녀가 경주 문무대왕릉 인근 해변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경주 대본리 해녀들이 미역 채취를 마치고 가곡방파제로 돌아오고 있다.
경주 대본리 가곡방파제에서 마을 주민들이 해녀가 채취해온 미역을 다듬고 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해녀들은 보통 물질 대신 육지에서 체력 부담이 적은 일을 맡는다.
2011년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에서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에서 거리가 멀수록 갑상선암 발생률은 감소했으며, 원자력발전소 주변지역(원자력발전소에서 5㎞ 이내) 여성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원거리 대조지역(원자력발전소에서 30㎞ 이상 떨어진 지역) 여성 주민의 2.5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본리 마을은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약 5㎞ 떨어져 있다.

현재 해녀들을 포함한 원전 인근 갑상선암 환자들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공동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원은 2014년 박모(51·여)씨의 한수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박씨가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방사선에 노출되는 바람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주민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지금껏 국가 에너지 정책 앞에 지역민의 평화적 생존권은 쉽사리 소외돼 왔다. 암에 걸린 해녀들이 바다를 떠날수록, 큰 지진이 찾아와 주민들이 불안함에 밤을 지새울수록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선전만 견고해졌다. 새 정부는 신규 원전의 건설 중단, 노후 원전 폐쇄 등 탈원전 공약을 내놓았다. 일상화된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으로 눈 돌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차례다.

경주=글·사진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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