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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찾고자 하는 이에게만 깃들이는 마법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놓지만 않으면 희망은 그의 것이다. 저절로 일어나는 기적이란 없다. 기적은 선택이다.’ 우연찮게 들어간 영화관에서 ‘아뉴스 데이’를 보고 아침 산책길에 메모한 소감이다. 진부해도 자신이 직접 전율로 받아들이는 체험은 소중하다. 프랑스 여성감독 안느 퐁텐이 수녀들의 참혹과 희망을 담아낸 영화다. 1945년 폴란드 수녀원 수녀 일곱 명이 임신을 해서 프랑스 적십자사 소속 여성 마틸드에게 긴급한 도움을 청한다. 독일군에 이어 러시아군까지 수녀원을 겁탈해 생긴 참혹이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수녀들은 컴컴한 깊은 절망에서 헤어날 수 없다. 신이 진정 존재한다면, 오롯이 충성을 맹서한 유일한 신랑인 그 신은, 그녀들을 그리 방치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아무리 기도해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어요.” “신앙이란 어린아이와도 같아요. 처음 하느님의 손을 잡으면 어른의 손을 잡은 것처럼 안정감이 들죠. 하지만 그러다가 하느님은 손을 갑자기 빼버려요.” “도와주세요.” 프랑스 의사의 노트에서 70년 만에 찾아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많은 상념을 일으킨다. 전쟁과 남성은 동일한 반열의 폭력인가. 여성과 생명은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희망인가. 신은 과연 희망의 편인가. 수녀들은 마틸드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평정을 회복하면서 생명들을 출산한다. 세상에 막 나와 높이 우는 아이들은 그들이 악의 씨앗이든 운명의 장난이든 보는 이들에겐 애처롭고 안타까운 생명일 따름이다.

세상의 모든 윤리와 신념과 이성을 단숨에 무화시키는 최고 단계의 폭력은 두말할 것도 없는 전쟁이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꼬드김은 사악한 지옥의 목소리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신비의 합창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정언이야말로 이 영화에 꼭 들어맞는 전언이다. 저 영화 속 수녀들은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들판의 야생화들이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기로소니 풀꽃들에게 무슨 죄를 물을까. 캄캄한 죄의 수렁에서 떨던 수녀들은 그녀들만의 신을 당당히 발견했다. 죽은, 숨어버린, 그 신을 그녀들이 찾아냈다. 야속하지만, 포기하는 이들에게 신이나 희망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 생명, 연대, 이를 지켜보는 우주의 시선, 아름다웠다. ‘아뉴스 데이(Agnus Dei)’란 라틴어로 ‘신의 어린 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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