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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애인 대상 성범죄 늘어도 기소율은 줄어…'도가니법' 무색

입력 : 2017-03-07 19:29:58 수정 : 2017-03-09 14: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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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00건 발생에도 기소율은 줄어… ‘도가니법’ 무색 / 지적장애女 ‘몹쓸 짓’ 70대 구속 / 녹음파일 발견되며 범행 들통 / 자존감 낮아 성폭력 노출 쉬워 / 진술 일관성 결여… 불기소 허다 / 법정형 강화에도 구제 못 받아 / “당국, 장애 대한 이해 높아져야”
“너무 무서웠어요….”

지적장애 3급인 A(35·여)씨는 지난해 이웃에 사는 정모(73)씨 때문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정씨는 평소 A씨에게 집요하게 치근덕댔다. 전과 27범인 정씨는 A씨의 어머니(61·지적장애3급)에게 접근해 모녀의 집에 드나들었다. 범행을 벌인 건 지난해 7월. 어머니를 술심부름 시켜 밖으로 내보낸 뒤 A씨에게 몹쓸 짓을 했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안 A씨 언니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정씨는 “나이가 많다”, “아프다” 등 이런저런 핑계로 출석을 거부하고 혐의를 부인하는 등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정씨를 꼼짝 못하게 한 건 어머니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녹음파일이었다. 우연히 저장된 그 안에는 “딸 언제 줄 거야”, “나도 한 번 달라고 해” 등 파렴치한 민낯을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1대는 정씨가 이전에도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두 번이나 저지른 전력이 있는 점을 확인하고 지난달 7일 구속했다.

여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년간 매년 800건 이상 발생한 성범죄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들이 성범죄자들에게 ‘손쉬운 타깃’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당국의 낮은 이해로 기소율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7일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293건이었던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2014년 927건으로 3배 이상 치솟았고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857건, 807건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드러나지 않은 범죄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지적장애인의 처지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장애인연합의 한 보고서는 지적장애인은 유아기부터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기 때문에 친밀감을 조금만 보여줘도 잘 따르는 경향이 있어 성폭력에 노출되기 쉽고 피해를 당했을 땐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2011년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형량을 강화한 ‘도가니법’이 제정되는 등 솜방망이 처벌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현장에선 사법당국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일관되게 부인하는 피의자와 달리 성폭행 피해를 당한 장애인의 진술이 오락가락한다는 이유로 불기소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장애인 성범죄는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더라도 재판에서 질 가능성 때문인지 검찰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에 따르면 2013년 45.3%였던 장애인 대상 성범죄 기소율은 이후 2014년(37.1%), 2015년(33.5%), 2016년 8월(33.3%) 등 해마다 뒷걸음치고 있다. 법정형이 높아지고 법원이 장애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검찰이 느끼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상급심에서 뒤집히긴 했지만 지난해 13세 지적장애 소녀가 떡볶이를 얻어 먹고 닷새 동안 6명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하은이 사건(떡볶이 화대사건)’을 법원이 ‘성매매’로 규정하기도 했다. 장애여성공감의 민들레 활동가는 “장애인 성범죄에 대한 입법적 결단은 내려졌지만 수사실무나 법원판례는 여전히 보수적”이라며 “어떤 검사와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일이 많아 현장에선 ‘복불복’이라고 부른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법당국이 성폭력상담소나 장애인인권센터의 판단과 의견을 재판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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